1. 개요
2. 배경
3. 군사 경력
3.1. 태평천국 운동
3.2. 제2차 아편전쟁
1857년 2차 아편전쟁이 발발하자 셍게린첸은 톈진의 방어를 책임질 흠차대신으로 임명된다. 2년 후 2차 다구포대 전투에서 영미연합군을 패퇴시킨 뒤 그와 이조의는 청군의 방어력을 과대평가했다. 1860년 영불연합군이 3차 다구포대 전투에서 청군을 격파하고 톈진을 점령하자 셍게린첸은 퉁저우로 후퇴했다. 영불연합군의 교섭단인 헨리 스미스 파크스와 헨리 로크가 평화 협상을 위해 퉁저우로 방문하자 셍게린첸은 이들을 체포하고 베이징으로 압송한다.[4] 그들 중 상당수가 질병과 고문으로 죽었다[5]. 팔리교 전투에서 그와 몽골 기병대는 영불연합군을 공격하지만 전열보병의 위력을 무시한 채 나폴레옹과 붙은 맘루크 기병대마냥 기병의 기동성만 믿고 돌진하다가 총에 맞고 패배하여 몽골 기병대는 완전히 섬멸되었다. 영국의 엘긴 백작은 베이징에 입성한 후 셍게린첸의 교섭단 납치와 살해에 대한 보복으로 영불연합군에 원명원을 불태울 것을 명령했다. 셍게린첸은 외침을 막아내지 못해 작위를 잃었으나 계속해서 흠차대신으로 재직했다.
4. 죽음
청 조정은 염군의 난 소식을 접했고 셍게린첸은 산동, 허난, 안휘성의 난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1865년의 전투에서 그는 허쩌의 요새 근처에 있는 선술집에서 뇌문광과 송정석의 염군에게 기습공격을 당했다. 셍게린첸은 그의 몇 기병들과 숲 속으로 피했지만 염군의 하급 지도자인 장평경에게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