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한국어
| 술타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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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 Soltaniy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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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어
| السلطاني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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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 Soltaniy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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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위치
| 이란 잔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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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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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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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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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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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본래 작은 마을에 불과했으나 1290년, 일 칸국의 아르쿤 칸이 여름 별장을 지으며 왕실과 인연을 맺었다.
한편, 이슬람 수니파의 법학파인 하나피와 샤피이 간의 당쟁에 지쳐 있던 올제이투 칸은 시아파의 열두이맘파 학자인 알 힐릴리의 설교에 시아파로 개종하였다. (1310년) 이후 그는 알리, 후세인 등 이맘들의 유골을 술타니아로 옮겨오려 했으나 사당을 이전하는데 그쳤다. 한편, 크리스트교[7], 불교, 순니/쉬아 이슬람 모두를 경험한 올제이투 칸은 종교적으로 관대하였다. 따라서 1318년 가톨릭 주교구가 설치되어 1450년경까지 유지되었다. 올제이투 칸은 술타니야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위대한 도시가 되길 바랐고 이곳에서 임종을 맞았다. (1316년)
파일:2771ae11b1ab21a0b5125555e55d2f1e.jpg
18세기의 삽화
올제이투 칸의 사후 술타니야는 정치적 중요성을 상실하였다. 1384년, 도시는 티무르에 의해 약탈당했는데 올제이투 영묘는 무사했다. 근대 카자르 왕조 대에 술타니아 평원은 군사 훈련에 이용되었다.
3. 올제이투 영묘
파일:Solt_dome_1.jpg
랜드마크인 올제이투 영묘
이슬람 문명권의 무덤 양식인 모졸렘의 걸작으로서, '타지마할을 예견한'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터키석으로 장식된 돔은 피렌체 두오모, 하기아 소피아 다음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돔이다.
랜드마크인 올제이투 영묘
이슬람 문명권의 무덤 양식인 모졸렘의 걸작으로서, '타지마할을 예견한'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터키석으로 장식된 돔은 피렌체 두오모, 하기아 소피아 다음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돔이다.
[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3]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4]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5]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6]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7] 디교황 니콜라오 4세를 대부로 니콜랴라는 세례명까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