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
2. 상세
3. 역사
수원화성 축조 당시에도 있었는데, 당시에는 대천(大川)이라고 불리었다.
광교대천이 성 전체를 가로로 자르며 흐르고 있어, 여름 장마 때마다 범람하는 환난이 있었다. 그래서 성을 쌓기 시작할 때에 물길을 내는 일을 먼저 하였다. (화성성역의궤 권수 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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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성당시에 매해 범람하여 1794년 (정조 18년) 3월에 개천을 파는 준천 작업을 하였다. 수원화성의 수문인 화홍문과 남수문의 자리를 정하고 준설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준천작업은 화홍문 밖 600보에서 시작되어, 광교산에서 흘러오던 물을 화홍문을 지나 성 내로 흐르게 하였다. 천의 한가운데에는 95척의 오교(午橋)라는 나무다리를 놓아 천을 건널 수 있게 하였다.[1]
수백년이 지나 1991년에는 수원화성 성곽 내의 교통난을 해소하고 남문상권을 위해 하천의 일부 구간을 시멘트로 복개하였다. 이에 수질이 매우 나빠져서 물에서 악취까지 나기 시작했다. 1994년 화성 성 밖의 지동교에서 매교다리까지 약 780m의 구간을 수원 시민 94%의 찬성으로 복개되었다. 1995년에 상류 부분의 공사를 시작하였는데, 15개 시민단체가 ‘수원천되살리기운동본부’를 만들어 ‘수원천 복개 반대 및 남수문 복원 촉구’운동을 하여 복개 공사가 취소되었다. 1996년부터는 직선화와 복개로 오염된 수원천을 살리기 위해 복개를 걷어내고, 자연형 하천으로 변화시켰으며, 생태복원사업을 추진하였다. 2010년이 되어 남은 780m의 복개 구간을 마저 복원 하였으며 그 후 남수문을 복원하여 전구간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복원을 하였다.
4. 관련문서
[1] 현재 그 다리 옆에는 팔달구청과 수원화성박물관, 삼일중학교,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