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의 추존 황후
昭憲太后 | 소헌태후 | |
소헌태후(昭憲太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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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씨(杜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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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9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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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96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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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 북송의 황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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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0년 ~ 96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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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선조(宣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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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 두상(杜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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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가계
3. 금궤지맹
북송 건국 1년 뒤에 소헌태후 두씨가 임종을 앞두고 아들들을 불러모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후 승상인 조보에게 지금의 이야기를 모두 쓰되 틀리지 않도록 기록하라는 말을 남기며, 그들의 대화를 금궤에 보관하였는데 이를 금궤지맹이라고 불렀다.
3.1. 금궤지맹에 대한 논란
소헌태후 두씨의 금궤지맹대로 간다면 제위 계승 순서는 다음과 같다.
조광윤→조광의→조정미→조덕소
쉽게 말해 제위를 물려주는 건 형제 상속 이후 태조의 아들인 조덕소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의문인 점은 조광의가 즉위한 이후였다. 976년에 태조가 세상을 떠난 이후, 태종이 금궤지맹을 공개한 것은 즉위한지 5년이 지난 뒤였다. 재상에게 기록하게 하고 금궤에 보관하도록 한 이유나 즉위 이후 금궤지맹을 바로 공개하지 않은 것이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961년에 태후가 세상을 떠날 당시 조광윤은 30대 중반이었고, 태조의 아들인 조덕소는 10대 초반의 나이였다. 또한 조광윤이 976년에 사망할 때 조덕소는 이미 20대 중반의 나이였기 때문에, 조광의가 조광윤에게 "어린 아들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이라고 말하는 게 성립되지 않는다. 이는 후주의 세종이 자신의 어린 아들이었던 시종훈에게 제위를 물려준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래서 금궤지맹에 대한 논란과 더불어 나온 일화가 바로 촉영부성의 일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