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고 요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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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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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기체 결함, 관제센터 과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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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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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종
| Curtiss C-46 Comma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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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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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체 등록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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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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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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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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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인원
| 2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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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 탑승자 전원 및
지상 주민 56명 총 80명 사망 |
생존자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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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이하 내용은 1967년 당시 공군참모총장이었던 장지량 중장의 회고록을 인용한 것.
이 사고는 김포공항 관제탑의 실수로 빚어진 어처구니 없는 사고였다. 원래 관제탑은 공군이 맡아 왔으나, 사고가 나기 3년 전 부터는 교통부 항공국에 이관되어 관할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날 관제탑의 통신 지휘가 이상하게 엇갈리고 말았던 것.
대구를 출발해 김포로 향하던 민간 항공기가 김포비행장에 내리기 위해 서울 동남방 무선통신지휘소 상공으로 다가오고, 공군 수송기 C-46 역시 여의도 공항을 이륙해 무선통신지휘소 상공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무선통신지휘소가 있는 곳은 착륙과 이륙을 위해 신호를 받는 교차 지점이었고, 이 곳에서 관제탑의 통신 지휘를 받게 되어 있었다. 이륙과 착륙 비행기가 동시에 있을 경우 먼저 착륙 비행기를 상공에서 선회하게 한 뒤, 이륙 비행기가 이륙을 마치고 무선통신지휘소를 빠져 나갈 때 착륙 허가를 내주는 것이 기본 수칙이었다.
하지만 관제탑은 뭔가 착각을 했던지 이륙하려는 비행기(공군 C-46기)에게 홀딩 명령(상공 선회)을 지시하고, 대구에서 오는 민간 항공기에게 먼저 착륙 허가를 내주고 말았다. 정 반대의 지시였던 것이다. 당연히 이륙중인 항공기에게 상공을 선회하라는 것은 잘못된 지시였다. 이륙하는 도중에 공중에서 선회하라는 지시이기 때문.
C-46 수송기 조종사는 관제탑의 사인이 옳지 않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통신 지휘를 그대로 받는 것이 기본) 이륙하던 중 낮은 고도에서 상공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동쪽의 불암산, 남쪽의 남한산성, 북쪽의 도봉산과 청와대가 있는 인왕산도 들이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그 날은 구름이 잔뜩 낀 악천후였다.
결국 조종사는 낮은 고도에서 구름속을 헤메다 방향을 잃고 끝내 청구동 산비탈(현 신당 삼성아파트 근처)에 기체를 들이받고 추락하고 말았다.
이 사고에서 운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연이 하나 있는데, C-46 수송기가 김포공항을 이륙해 여의도 공항에 있는 탑승객을 싣기 위해 잠깐 여의도 비행장에 기착했다. 이 곳에서 몇 명의 탑승객을 싣고 C-46이 이륙하려던 때 공군 장교 A가 택시를 타고 쏜살같이 여의도 비행장으로 달려 들어왔다. A장교는 애초 동료 장교 B와 함께 기차로 고향인 대구를 다녀올 예정으로 김포 공군기지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역으로 나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버스가 제 2 한강교에 이르렀을 때, 수송기가 여의도 비행장에 기착하는 것이 이들의 눈에 보였던 것. A는 B에게 저 수송기는 대구로 가는 비행기이니 저것을 타고 가자고 말했으나 B는 서울역에 볼 일도 있고 하여 그대로 가겠다고 했고, A는 혼자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타고 여의도 비행장으로 달려갔다.
A가 막 비행장에 도착했을 때는 수송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나오는 중이었다. 그런데 조종사의 눈에 택시에서 내려 쏜살같이 달려오는 사람을 보니 조종사 동기생이었던 것, 그래서 C-46 조종사는 브레이크를 걸어 놓고 A가 타기를 기다렸다가 잠시 후 이륙했다.
그대로 기차를 타고 갔으면 될 것을 A는 결국 모험하듯 아슬아슬하게 달려가 수송기를 타고 변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사고는 김포공항 관제탑의 실수로 빚어진 어처구니 없는 사고였다. 원래 관제탑은 공군이 맡아 왔으나, 사고가 나기 3년 전 부터는 교통부 항공국에 이관되어 관할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날 관제탑의 통신 지휘가 이상하게 엇갈리고 말았던 것.
대구를 출발해 김포로 향하던 민간 항공기가 김포비행장에 내리기 위해 서울 동남방 무선통신지휘소 상공으로 다가오고, 공군 수송기 C-46 역시 여의도 공항을 이륙해 무선통신지휘소 상공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무선통신지휘소가 있는 곳은 착륙과 이륙을 위해 신호를 받는 교차 지점이었고, 이 곳에서 관제탑의 통신 지휘를 받게 되어 있었다. 이륙과 착륙 비행기가 동시에 있을 경우 먼저 착륙 비행기를 상공에서 선회하게 한 뒤, 이륙 비행기가 이륙을 마치고 무선통신지휘소를 빠져 나갈 때 착륙 허가를 내주는 것이 기본 수칙이었다.
하지만 관제탑은 뭔가 착각을 했던지 이륙하려는 비행기(공군 C-46기)에게 홀딩 명령(상공 선회)을 지시하고, 대구에서 오는 민간 항공기에게 먼저 착륙 허가를 내주고 말았다. 정 반대의 지시였던 것이다. 당연히 이륙중인 항공기에게 상공을 선회하라는 것은 잘못된 지시였다. 이륙하는 도중에 공중에서 선회하라는 지시이기 때문.
C-46 수송기 조종사는 관제탑의 사인이 옳지 않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통신 지휘를 그대로 받는 것이 기본) 이륙하던 중 낮은 고도에서 상공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동쪽의 불암산, 남쪽의 남한산성, 북쪽의 도봉산과 청와대가 있는 인왕산도 들이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그 날은 구름이 잔뜩 낀 악천후였다.
결국 조종사는 낮은 고도에서 구름속을 헤메다 방향을 잃고 끝내 청구동 산비탈(현 신당 삼성아파트 근처)에 기체를 들이받고 추락하고 말았다.
이 사고에서 운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연이 하나 있는데, C-46 수송기가 김포공항을 이륙해 여의도 공항에 있는 탑승객을 싣기 위해 잠깐 여의도 비행장에 기착했다. 이 곳에서 몇 명의 탑승객을 싣고 C-46이 이륙하려던 때 공군 장교 A가 택시를 타고 쏜살같이 여의도 비행장으로 달려 들어왔다. A장교는 애초 동료 장교 B와 함께 기차로 고향인 대구를 다녀올 예정으로 김포 공군기지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역으로 나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버스가 제 2 한강교에 이르렀을 때, 수송기가 여의도 비행장에 기착하는 것이 이들의 눈에 보였던 것. A는 B에게 저 수송기는 대구로 가는 비행기이니 저것을 타고 가자고 말했으나 B는 서울역에 볼 일도 있고 하여 그대로 가겠다고 했고, A는 혼자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타고 여의도 비행장으로 달려갔다.
A가 막 비행장에 도착했을 때는 수송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나오는 중이었다. 그런데 조종사의 눈에 택시에서 내려 쏜살같이 달려오는 사람을 보니 조종사 동기생이었던 것, 그래서 C-46 조종사는 브레이크를 걸어 놓고 A가 타기를 기다렸다가 잠시 후 이륙했다.
그대로 기차를 타고 갔으면 될 것을 A는 결국 모험하듯 아슬아슬하게 달려가 수송기를 타고 변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