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공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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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처음에는 공관을 수표교 근처, 지금의 종로구 관수동 126번지에 두었으나 1889년(고종 26년) 10월에 서양인들이 밀집한 정동으로 옮겼다. 관수동에 있을 때나 정동으로 처음 옮겼을 때는 공관 건물이 한옥이었다. 서양식으로 건물을 지은 것은 1896년(건양 원년)이었다. 새 건물은 한양도성 성벽 바로 안쪽에 있었으며, 높은 곳에 위치해 러시아공사관과 더불어 한성에서 눈에 띄는 외교공관 중 하나였다. 설계자가 누군지는 자세히 모르나, 당시 조선 정부의 궁중 건축 일을 맡았던 프랑스 건축가 조제프 오귀스트 살라벨(Joseph Auguste Salebelle)로 추측하는 의견이 있다.#
프랑스공사관과 한양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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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수립 후 1905년(광무 9년) 11월에 일제가 을사늑약 체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여 한국과 프랑스의 국교는 끊겼다. 프랑스공사관은 국가 대 국가로 주요 외교업무를 상대하는 공사관이 아닌, 정치성이 없는 업무를 담당하는 영사관이 되었다.
1910년(융희 4년) 8월에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겼고, 그해 10월에 프랑스영사관은 청사를 지금의 서대문구 서소문로 43-12[4]에 있는 민영환 옛 집터로 옮겼다. 참고로 프랑스영사관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주한프랑스대사관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그 자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매입한 옛 공사관 영역에 1914년 서대문소학교가 들어서면서 건물은 운동장 한복판에 놓이게 되었다. 이후 여러 단체들이 사용하다 노후화 및 학교 확장 등의 이유로 1935년에 헐렸다.#
서대문소학교는 8.15 광복 이후 서울서대문국민학교로 바뀌었다가 1973년에 문을 닫았고 그해 2월에 종로구 재동에 있던 창덕여자중학교가 이곳으로 이전해와 현재까지 있다.#
1910년(융희 4년) 8월에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겼고, 그해 10월에 프랑스영사관은 청사를 지금의 서대문구 서소문로 43-12[4]에 있는 민영환 옛 집터로 옮겼다. 참고로 프랑스영사관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주한프랑스대사관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그 자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매입한 옛 공사관 영역에 1914년 서대문소학교가 들어서면서 건물은 운동장 한복판에 놓이게 되었다. 이후 여러 단체들이 사용하다 노후화 및 학교 확장 등의 이유로 1935년에 헐렸다.#
서대문소학교는 8.15 광복 이후 서울서대문국민학교로 바뀌었다가 1973년에 문을 닫았고 그해 2월에 종로구 재동에 있던 창덕여자중학교가 이곳으로 이전해와 현재까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