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축구감독 | ||
이름
| 사페트 수시치
Safet Sušić | |
출생
| ||
국적
| ||
신체
| 키 174cm
| |
직업
| ||
소속
| 선수
| |
감독
| AS 칸(1994~1995)
이스탄불스포르(1996~1998) 알 힐랄 FC(2001) 콘야스포르(2004~2005) 앙카라귀퀴(2005~2006) 차이쿠르 리제스포르(2006) 차이쿠르 리제스포르(2008) 앙카라스포르(2008-2009) 보스니아 대표팀(2009~2014) 에비앙 토농 가야르(2015~2016) 알라니아스포르(2017) 벨레디예스포르(2018) | |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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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스니아의 마법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舊 유고슬라비아 SFR)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8년에 벨레디예스포르 감독을 맡았다.
현역 시절에는 공격형 미드필더였는데, 뛰어난 패싱 능력과 드리블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웬 스웨덴 출신의 까마득한 후배 거인이 오기 전까지 리게 앙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를 꼽으라면 보통 수시치가 꼽혔고, PSG 역대 최고의 선수로도 거론되었다. 실제로 2010년 프랑스 풋볼지에서는 조지 웨아, 파울레타, 하이 등을 모두 재끼고 수시치를 PSG 역대 최고의 선수로 선정한 바 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舊 유고슬라비아 SFR)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8년에 벨레디예스포르 감독을 맡았다.
현역 시절에는 공격형 미드필더였는데, 뛰어난 패싱 능력과 드리블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웬 스웨덴 출신의 까마득한 후배 거인이 오기 전까지 리게 앙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를 꼽으라면 보통 수시치가 꼽혔고, PSG 역대 최고의 선수로도 거론되었다. 실제로 2010년 프랑스 풋볼지에서는 조지 웨아, 파울레타, 하이 등을 모두 재끼고 수시치를 PSG 역대 최고의 선수로 선정한 바 있다.
2. 클럽
파일:external/www.index.hr/SafetSusicAFP5555V.jpg
수시치는 고향을 연고로 하는 크리바야 자비도비치 유스팀에 있다가 보스니아 최대의 클럽인 FK 사라예보로 옮겼고 그곳에서 성인 무대에 데뷔한다. 첫 시즌 10경기 2골을 기록한 수시치는 두번째 시즌부터는 완전히 주전 자리를 획득했고 1982-83 시즌 중반 팀을 떠날 때 까지 244경기에 나서 96골을 기록했다. 특히 1979-80 시즌에는 17골로 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본래 파리 생제르맹으로의 이적은 1982년 월드컵 도중 확정된 사안이었으나 유고슬라비아의 법은 즉각적인 이적을 막았고 수시치는 결국 1982년 말이 돼서야 프랑스 무대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되었다. 수시치는 시즌 도중 팀을 옮겼음에도 훌륭히 적응했고 리그에서 18경기 8골을 득점했다. 이 시즌 파리는 쿠프 드 프랑스 결승전에 올랐는데, 이 경기에서 수시치는 1골 1어시스트라는 엄청난 활약을 선보였다. 파리의 상대 팀은 낭트였고 1-2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시치는 동점골을 넣었다. 거기에 종료 7분 전 낭트의 수비진을 얼려버리는 날카로운 패스로 나바팅게 토코의 골을 도왔다. 팀은 3-2로 역전승을 거두었고 파리 역사상 2번째 쿠프 드 프랑스 우승컵이었다. 수시치는 이 시즌 절반만을 뛰고도 리게 앙 올해의 외국인 선수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수시치의 거기에서 활약은 멈추지 않았다. 1984-85 시즌에는 SC 바스티아와의 경기에서 혼자서 5 어시스트를 뽑아내는 등 팀의 7-1 대승을 이끌어내기도 했고, 1985-86 시즌에는 득점왕을 차지한 도미니크 로슈토와 함께 PSG의 사상 첫 리그 우승을 이끌어 냈다. 1988-89 시즌에는 준우승을 기록하는 등 후에 파리에 거대 자본이 들어와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1991년까지 파리에서 수시치는 총 345경기에 나서 85골을 기록했으며 리그에서 총 6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해 이 부분에서는 구단 내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1991-92 시즌을 앞두고 수시치는 2부리그의 레드 스타 FC로 이적해 1시즌을 뛰었고 시즌이 끝난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수시치는 고향을 연고로 하는 크리바야 자비도비치 유스팀에 있다가 보스니아 최대의 클럽인 FK 사라예보로 옮겼고 그곳에서 성인 무대에 데뷔한다. 첫 시즌 10경기 2골을 기록한 수시치는 두번째 시즌부터는 완전히 주전 자리를 획득했고 1982-83 시즌 중반 팀을 떠날 때 까지 244경기에 나서 96골을 기록했다. 특히 1979-80 시즌에는 17골로 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본래 파리 생제르맹으로의 이적은 1982년 월드컵 도중 확정된 사안이었으나 유고슬라비아의 법은 즉각적인 이적을 막았고 수시치는 결국 1982년 말이 돼서야 프랑스 무대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되었다. 수시치는 시즌 도중 팀을 옮겼음에도 훌륭히 적응했고 리그에서 18경기 8골을 득점했다. 이 시즌 파리는 쿠프 드 프랑스 결승전에 올랐는데, 이 경기에서 수시치는 1골 1어시스트라는 엄청난 활약을 선보였다. 파리의 상대 팀은 낭트였고 1-2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시치는 동점골을 넣었다. 거기에 종료 7분 전 낭트의 수비진을 얼려버리는 날카로운 패스로 나바팅게 토코의 골을 도왔다. 팀은 3-2로 역전승을 거두었고 파리 역사상 2번째 쿠프 드 프랑스 우승컵이었다. 수시치는 이 시즌 절반만을 뛰고도 리게 앙 올해의 외국인 선수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수시치의 거기에서 활약은 멈추지 않았다. 1984-85 시즌에는 SC 바스티아와의 경기에서 혼자서 5 어시스트를 뽑아내는 등 팀의 7-1 대승을 이끌어내기도 했고, 1985-86 시즌에는 득점왕을 차지한 도미니크 로슈토와 함께 PSG의 사상 첫 리그 우승을 이끌어 냈다. 1988-89 시즌에는 준우승을 기록하는 등 후에 파리에 거대 자본이 들어와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1991년까지 파리에서 수시치는 총 345경기에 나서 85골을 기록했으며 리그에서 총 6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해 이 부분에서는 구단 내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1991-92 시즌을 앞두고 수시치는 2부리그의 레드 스타 FC로 이적해 1시즌을 뛰었고 시즌이 끝난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4. 감독
5. 이야깃거리
축구선수 집안이다. 형인 세아드 수시치는 FK 츠르베나 즈베즈다를 비롯해 벨기에 무대에서 뛴 바 있으며 조카[6]인 티노 스벤 수시치는 벨기에 청소년 대표팀을 거쳐 보스니아 대표팀의 일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도 참가했으며 인터 밀란, AC 밀란 등의 관심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