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생
몽골 제국의 한족 항장 출신 인물이며 1213년 금나라를 침공한 칭기즈 칸한테 아버지 사병직, 형 사천예와 함께 투항해서 사천예와 함께 무칼리를 도와 금나라 정벌에 큰 공을 세웠다. 사천예가 전사하고 무칼리가 죽은 이후 그는 무칼리의 아들 보로를 도와 당시 금나라 편을 들던 북중국의 호족, 군벌들을 제압하며 몽골 제국이 화북과 산동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는 토대를 쌓는데 일조하였고 오고타이 칸 시절에는 금나라의 위주 지역을 정벌해서 금나라 멸망에 일조한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서 그는 몽골 제국 내에서 유력한 한인 세후가 되었고 자신의 근거지인 진정이 툴루이 가문에 속하면서 그들과 친분을 쌓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쿠빌라이 칸 집권기에는 재상을 맡아서 남송 정벌에 참전하였는데 정벌 와중 그는 병에 걸려서 1275년 3월 5일 74세의 나이로 진중에서 사망하고 만다.
2. 평가
곽보옥[1]과 함께 최초로 몽골 제국에 항복해서 충성을 바친 한족 인물로 항장 출신에도 불구하고 몽골 제국에서는 그를 한족이 아닌 몽골인으로 여겼으며 그의 증손인 사삭은 복건성의 평장정사 자리에도 오를 정도로 사천택 가문을 우대했다. 그는 몽골 제국의 정복 전쟁 초창기인 칭기즈 칸의 금나라 정벌부터 말기인 쿠빌라이 칸의 남송 정벌까지 몽골 제국의 중국 정벌에서 막대한 공을 세웠고 금나라의 위주 지역 정벌 때에는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배후를 기습해서 위주 정벌에 성공을 거둘 정도로 군사적 능력이 뛰어났다. 그의 활약이 두드러진 것은 당시 금나라 정벌을 맡았던 무칼리의 죽음 이후 몽골에 협력했던 많은 호족, 군벌 세력이 금나라, 남송에 투항할 당시에도 꿋꿋이 몽골에 충성해서 잔여 항몽 세력을 규합해서 이후 몽골이 화북, 산동 지역을 장악하는데 큰 공을 세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