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블레르 47mm 대전차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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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원

중량
315kg
구경
47mm L/32
길이
1.65m
높이
1.02m
조작원
5명
관통력
철갑탄 100m에서 58mm , 500m에서 43mm 대전차고폭탄 112mm
상하각도
-15° ~ +56°
좌우각도
좌우로 62°
발사속도
분당 최대 28발 최소7~8발
포구초속
유효사거리
300m
최대사거리
7.000m

블레르 47mm 대전차포의 관통력 30° 기준
무게
포구초속
100
500
1000
1500
2000
1.45 kg
670 m/s
57
44
32
23
17

2. 개요

Cannone da 47/32 M35


제2차 세계대전 시절 이탈리아군의 주력 대전차포.

블레르 47mm 대전차포는 오스트리아에 Böhler라는 회사에서 설계한 보병포이지만 대전차포로 더 유명해진 화포이다.

1930년대에 이탈리아 왕국군은 구식 65/17 보병포를 대체하기 위해서 이 화포를 일부 구입하여 제식 화기로 채택, 라이선스 생산하게 된다. 채택 당시 독일의 PaK 36, 영국의 2파운더, 소련의 45mm 53K 같은 소구경 포가 주류였음을 감안할 때 이 포는 40mm 정도에 관통력은 채택 당시에는 좋은 성능이었고 철갑탄과 고폭탄, 점착 유탄을 사용할 수 있었다. 영국의 2파운더보다 선택의 폭이 넓다 M13/40 중형전차경전차세모벤테 L40 AS.42, 그리고 실험적으로 AB40/41 장갑차에 장착되는 등 여러 곳에 장착되어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가하면서 47mm 포는 적 전차를 상대하기 힘들어졌다. 그리스 쪽에서는 영국의 순항전차들이 주적이라서 어느 정도는 관통이 가능했지만 1942년에 접어든 시점에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마주친 마틸다 전차는 당연히 관통할 수 없었다. 이에 신형탄을 개발하는 등 노력을 하지만 결국 이탈리아군은 47mm 포가 매우 비효율적임을 인식하고 75/32 Mod 37 대전차포에 생산에 주력하지만75/32 대전차포는 41년에 설계가 완료되었지만 이탈리아의 안습인 산업력 때문에 1943년이 돼서야 생산하게 되지만... 1943년 이탈리아가 항복하였고 47mm 포는 독일군의 손에 들어가 4.7 cm Pak 177(i)라는 이름으로 살로 공화국이 항복할 때까지 사용된다.

3. 여담

파일:47m proto.png
많은 사람들이 이 화포의 모습을 보고 포방패가 없다는 것을 인지했을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야 포방패가 없다니 전장에서 화포를 조종하는 병사를 보호할 수단이 없었던 것이다(...).포방패 대신 고기방패 사실 위 사진처럼 포방패를 달 생각이었고 프로토타입까지 완성했지만 높으신 분들의 시대에 어긋난 발상과 이탈리아의 눈물나는 산업력으로 인해서 달지 않은 것이다.

파일:external/beutepanzer.ru/universal-at-19.jpg
전쟁 말기의 독일군은 됭케르크 철수작전 때 영국군이 놓고 간 브렌건 캐리어와 이탈리아 항복 이후에 얻은 블레르 47mm 대전차포를 결합한 혼종을 생산했다. 게다가 여러 가지 형식으로 생산되어 전장에서 활용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