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가족
3. 생애
4. 성씨
사서 및 묘지명에 따르면 박지윤은 할아버지 찰산후 때부터 이미 박(朴)씨 성을 사용했고 성씨가 내려와 현재의 평산 박씨와 평주 박씨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박지윤의 거점지인 평주가 고구려의 옛 땅이었고 자기 아버지가 대놓고 대모달을 자칭한 것을 보면 박지윤은 고구려계로 추정된다. 그러나 고구려 관직을 자칭한 것치고는 성씨가 전형적인 신라계 성씨인 박씨인 점이 모순인데 박씨는 예나 지금이나 본래 중국에도 없는 성씨로[3] 모든 본관이 박혁거세의 후손인 순수한 신라계 성씨이기 때문. 옛 고구려에도 박씨 인명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몇 가지 가정을 할 수 있는데 신라계 가문이지만 옛 고구려 지역의 세력가로서 현지인의 신망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구려 관직을 자칭했다는 것이다. 당장 궁예나 견훤이 원신라(지금의 경상도 지역) 출신임에도 현지에서 왕을 칭하기 위해 옛 고구려나 백제의 이름을 빌린 이유와 같다. 혹은 옛 고구려 땅이라고 모두가 고구려계 주민인건 아니고 782년 신라가 남쪽 주민들을 패서로 이주시킨 사민 정책이 보이기 때문에 패서로 이주시킨 신라계 주민이 옛 고구려 지역에 연고를 두면서 문화적, 혈통적으로 고구려에 동화된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고구려계가 맞는데 박씨는 단지 명문가의 성씨를 사칭한 것이라는 설이다. 이 시기는 호족들이 성씨를 칭하기 시작하는 시기였고 성씨가 없던 고구려계가 박씨를 자칭했을 가능성도 높다는 것. 다만 실제 고구려계 가문이라면 다른 성도 많은데 굳이 박씨를 왜 자칭했는지가 의문이다. 고구려 멸망 후 수백 년이 지나며 원래 고구려에는 박씨가 없었다는 사실이 잊혀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현 대한민국에는 평산 박씨와 평주 박씨가 같이 존재하는데 평산과 평주는 같은 곳인데다 한쪽은 자신의 아버지 박직윤, 한쪽은 자신의 아들 박수경을 시조로 하고 있어서 같은 집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므로 몇 가지 가정을 할 수 있는데 신라계 가문이지만 옛 고구려 지역의 세력가로서 현지인의 신망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구려 관직을 자칭했다는 것이다. 당장 궁예나 견훤이 원신라(지금의 경상도 지역) 출신임에도 현지에서 왕을 칭하기 위해 옛 고구려나 백제의 이름을 빌린 이유와 같다. 혹은 옛 고구려 땅이라고 모두가 고구려계 주민인건 아니고 782년 신라가 남쪽 주민들을 패서로 이주시킨 사민 정책이 보이기 때문에 패서로 이주시킨 신라계 주민이 옛 고구려 지역에 연고를 두면서 문화적, 혈통적으로 고구려에 동화된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고구려계가 맞는데 박씨는 단지 명문가의 성씨를 사칭한 것이라는 설이다. 이 시기는 호족들이 성씨를 칭하기 시작하는 시기였고 성씨가 없던 고구려계가 박씨를 자칭했을 가능성도 높다는 것. 다만 실제 고구려계 가문이라면 다른 성도 많은데 굳이 박씨를 왜 자칭했는지가 의문이다. 고구려 멸망 후 수백 년이 지나며 원래 고구려에는 박씨가 없었다는 사실이 잊혀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현 대한민국에는 평산 박씨와 평주 박씨가 같이 존재하는데 평산과 평주는 같은 곳인데다 한쪽은 자신의 아버지 박직윤, 한쪽은 자신의 아들 박수경을 시조로 하고 있어서 같은 집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