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DP_2000[1].jpg|width=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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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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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표기
| Democratic Party(DP), 民主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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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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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명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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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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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 박상천 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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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석 수
| 8석 / 299석 |
당 색
| 청록색 (#0073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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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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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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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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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김한길계 탈당
2.2. 2007년 대선
이후 2007년 대선 독자 주행을 감행했으나 국민중심당에서 탈당한 냄새를 맡고 온 정당 브레이커 피닉제 이인제가 냉큼 대선 후보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당초 경선 승리가 예상되었던 조순형 의원은 금권 선거에 반대하며 중도 포기했고 얼마 못 가서 탈당했다.. 결국 경선 2위는 철새라는 소리를 들은 김민석이었다는 게 함정
더군다나 이인제의 대통령 출마에 불만을 품은 당 핵심 인사[3] 및 조직들이 죄다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이탈해서, 이 시기엔 이인제를 제외하면 민주당에 지역구 의원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비례대표 의원[4]들은 탈당하면 의원직 자동으로 상실하게 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당에 남았다. 이인제도 이런 결과를 알고 신당 측 정동영과 후보 단일화와 지분 나눠먹기를 협상하였으나 정동영은 (당연히) 7:3을 내세웠고 이인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실 대통합민주신당 입장에서는 7:3도 아까운 상황.[5]
같은 해 치러진 제17대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인 이인제는 0.7%의 득표율을 보이며 6위로 낙선하였다.[6]
더군다나 이인제의 대통령 출마에 불만을 품은 당 핵심 인사[3] 및 조직들이 죄다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이탈해서, 이 시기엔 이인제를 제외하면 민주당에 지역구 의원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비례대표 의원[4]들은 탈당하면 의원직 자동으로 상실하게 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당에 남았다. 이인제도 이런 결과를 알고 신당 측 정동영과 후보 단일화와 지분 나눠먹기를 협상하였으나 정동영은 (당연히) 7:3을 내세웠고 이인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실 대통합민주신당 입장에서는 7:3도 아까운 상황.[5]
같은 해 치러진 제17대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인 이인제는 0.7%의 득표율을 보이며 6위로 낙선하였다.[6]
2.3. 통합민주당으로 합당
3. 역대 지도부
4. 역대 선거 결과
4.1. 대통령 선거
연도
| 선거명
| 후보
| 득표수(득표율)
|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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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 160,708(0.7%)
| 낙선(6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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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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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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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교섭단체로 강등되고 2005년 당시 민주당으로 당명과 로고를 원상복구했다. 아마 2000년에 창당한 새천년민주당의 직접적인 후신 정당이라는 정통성 강조와, 대통합민주신당이 약칭을 민주신당으로 하려고 하자 그걸 막으려고 도로 민주당으로 복구한 듯하다.[2] 다만 중도통합민주당은 신설합당이었기에, 불과 8개월의 존속이었지만 기준은 2007년 6월 합당이 되었다.[3] 조순형 전 대표가 이 시기에 당을 나갔다. 이 외에도 당 대변인을 맡았었던 장전형은 한나라당 후보인 이명박을 지지했다.[4] 이 중에서 한 사람이 후일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은 김종인이다.[5] 소속 국회의원만 해도 신당이 민주당보다 10배 이상이 많았다.[6] 정말 참패했다. 특히, 경상도 지역에서는 허경영 후보보다도 득표율이 밀렸다. 이는 그야말로 굴욕 중의 굴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