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8월 29일, 육군 야구단을 10회 연장 접전끝에 꺾고 제1회 NBC대회[2] 우승을 차지하고 찍은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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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명
| 조선미곡창고 야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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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업
| 조선미곡창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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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 1946년 ([age(1949-01-01)]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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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 1963년 ([age(1963-01-01)]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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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명 변천사
| 조선운송 야구단(1946~1958.9)
한국운송 야구단(1958.10~1962.1) 조선미곡창고 야구단(1962.1~1963) |
1. 소개
CJ 대한통운 블러그에 소개된 조선운수 야구단
1946년에 창단해, 한국실업야구 첫 대회때부터 참가한 원년구단.
조선운송(朝鮮運送) 야구단으로 출발, 한국운송 야구단을 거쳐 1962년 1월 모기업이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로 인수되면서 미창 야구단으로 발족되었다. 참고로 조선미곡창고는 1963년에 대한통운으로 이름을 바꾼다. [5]
당시 박현식, 서동준, 김응룡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로 꾸려졌다고 기록되었고 금련 야구단과 라이벌전으로 유명했다. 실업야구 리그에서는 1962년에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1963년 하계대회 이후 야구팀을 축소, 추계대회를 끝으로 야구팀을 해체했다. 해체 후 선수단은 크라운맥주 야구단으로 인수되었다.
1946년에 창단해, 한국실업야구 첫 대회때부터 참가한 원년구단.
조선운송(朝鮮運送) 야구단으로 출발, 한국운송 야구단을 거쳐 1962년 1월 모기업이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로 인수되면서 미창 야구단으로 발족되었다. 참고로 조선미곡창고는 1963년에 대한통운으로 이름을 바꾼다. [5]
당시 박현식, 서동준, 김응룡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로 꾸려졌다고 기록되었고 금련 야구단과 라이벌전으로 유명했다. 실업야구 리그에서는 1962년에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1963년 하계대회 이후 야구팀을 축소, 추계대회를 끝으로 야구팀을 해체했다. 해체 후 선수단은 크라운맥주 야구단으로 인수되었다.
2. 유니폼
1962년, 신미쓰미시중공업 야구단에 맞서는 실업선발 야구팀. 중간에 미창 야구단 유니폼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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