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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장관 大韓民國 文化體育觀光部 長官 The Minister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of the Republic of Korea | |
현직
| 황희 / 제5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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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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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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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문화 전문 부처 장관이라 장관 중 한직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과거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정부 대변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1] 정부 차원에서 뭔가를 공식적으로 공표하는 자리에서는 문화부 장관이 나서던 것이 통상적 사례였다. 이승만이나 박정희, 전두환 등이 집권하던 독재정권기에는 물론이고, 민주화 이후에도 언론이 정부와 사이가 안 좋으면 국정 운영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마냥 쉬운 보직이 아니다. 이전의 방송위원회와 2008년 방송통신위원회[2]가 본격화하면서 방송 쪽 상당부분은 영향력이 줄어들었지만 뉴스통신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된 뉴스통신진흥회를 통해 국가기간 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 쪽을 꽉 잡고 있다.[3][4]
신문 쪽의 주무기관인 점 외에도 시청률이 잘 안 나오긴 해도 아리랑TV나 국악방송, 국민방송(한국정책방송원) 등을 통해 방송에 관여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체육 쪽에도 신경쓸 게 많은데, 2007년에는 당시 안상수 인천광역시장이 노무현 현직 대통령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활동 지지 발언을 주작하여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유치를 지지하는 것처럼주작바꿔 버렸고, 이 일로 가만 있던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이 경질된다. 어쨌거나 이후 인천은 아시안게임을 개최했으나 득보다 실이 더 많았다. 게다가 명시적인 상관관계는 없다 해도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에서 국가대표팀 등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나쁜 성적을 거두는 것보다 정부·여당 입장에서도 좋아한다. 대회 끝나고 청와대 만찬 초대 등을 통해 방송에 나올 그림도 만들기 좋다.
관광 쪽은 한국관광공사라는 전문 공기업이 있기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크게 신경쓰진 않는 듯하다.[5] 괜히 관 주도로 문화산업 육성하려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역효과가 날 수도 있고..
부처의 특성상 김명곤, 이창동, 유인촌, 도종환 등 문화계 인사들이 장관을 맞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신문 쪽의 주무기관인 점 외에도 시청률이 잘 안 나오긴 해도 아리랑TV나 국악방송, 국민방송(한국정책방송원) 등을 통해 방송에 관여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체육 쪽에도 신경쓸 게 많은데, 2007년에는 당시 안상수 인천광역시장이 노무현 현직 대통령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활동 지지 발언을 주작하여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유치를 지지하는 것처럼
관광 쪽은 한국관광공사라는 전문 공기업이 있기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크게 신경쓰진 않는 듯하다.[5] 괜히 관 주도로 문화산업 육성하려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역효과가 날 수도 있고..
부처의 특성상 김명곤, 이창동, 유인촌, 도종환 등 문화계 인사들이 장관을 맞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2. 공보처장
3. 공보실장
4. 공보부 장관
정부
| 대수
| 이름
| 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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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 심흥선 (沈興善)
| 1961년 5월 20일 ~ 1961년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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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 오재경 (吳在璟)
| 1961년 7월 7일 ~ 1962년 6월 17일
| |
13대
| 이원우 (李元雨)
| 1962년 6월 18일 ~ 1963년 4월 11일
| |
14대
| 임성희 (任星熙)
| 1963년 4월 12일 ~ 1963년 12월 16일
| |
15대
| 김동성 (金東晟)
| 1963년 12월 17일 ~ 1964년 5월 10일
| |
16대
| 이수영 (李壽榮)
| 1964년 5월 11일 ~ 1964년 9월 1일
| |
17대
| 홍종철 (洪種哲)
| 1964년 9월 2일 ~ 1968년 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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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문화공보부 / 체육부
5.1. 문화공보부 장관
정부
| 대수
| 이름
| 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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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 홍종철 (洪種哲)
| 1968년 7월 24일 ~ 1969년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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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 신범식 (申範植)
| 1969년 4월 11일 ~ 1971년 6월 3일
| |
19대
| 윤주영 (尹胄榮)
| 1971년 6월 4일 ~ 1974년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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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 이원경 (李源京)
| 1974년 9월 18일 ~ 1975년 12월 18일
| |
21대
| 김성진 (金聖鎭)
| 1975년 12월 19일 ~ 1979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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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 이규현 (李揆現)
| 1979년 12월 14일 ~ 1980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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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대
| 이광표 (李光杓)
| 1980년 5월 22일 ~ 1982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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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대
| 이진희 (李振羲)
| 1982년 5월 21일 ~ 1985년 2월 18일
| |
25대
| 이원홍 (李元洪)
| 1985년 2월 19일 ~ 1986년 8월 26일
| |
26대
| 이웅희 (李雄熙)
| 1986년 8월 27일 ~ 1988년 2월 24일
| |
27대
| 정한모 (鄭漢模)
| 1988년 2월 25일 ~ 1988년 1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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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대
| 최병렬 (崔秉烈)
| 1988년 12월 5일 ~ 1989년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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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체육부 장관
정부
| 대수
| 이름
| 임기
|
초대
| 노태우 (盧泰愚)
| 1982년 3월 20일 ~ 1982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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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 이원경 (李源京)
| 1982년 4월 28일 ~ 1983년 10월 15일
| |
3대
| 이영호 (李永鎬)
| 1983년 10월 15일 ~ 1986년 1월 8일
| |
4대
| 박세직 (朴世直)
| 1986년 1월 8일 ~ 1986년 8월 27일
| |
5대
| 이세기 (李世基)
| 1986년 8월 27일 ~ 1987년 7월 14일
| |
6대
| 조상호 (曺相鎬)
| 1987년 7월 14일 ~ 1988년 12월 4일
| |
7대
| 김집 (金潗)
| 1988년 12월 5일 ~ 1990년 3월 18일
| |
8대
| 정동성 (鄭東星)
| 1990년 3월 19일 ~ 1990년 12월 26일
|
6. 문화체육부 / 공보처
6.1. 문화부 / 체육청소년부 / 문화체육부
6.1.1. 문화부 장관
6.1.2. 체육청소년부 장관
6.1.3. 문화체육부 장관
6.2. 공보처 장관
7. 문화관광부 / 국정홍보처
7.1. 문화관광부 장관
정부
| 대수
| 이름
| 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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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대
| 신낙균 (申樂均)
| 1998년 3월 3일 ~ 1999년 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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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대
| 박지원 (朴智元)
| 1999년 5월 23일 ~ 2000년 9월 19일
| |
37대
| 김한길 (金한길)
| 2000년 9월 20일 ~ 2001년 9월 18일
| |
38대
| 남궁진 (南宮鎭)
| 2001년 9월 19일 ~ 2002년 7월 10일
| |
39대
| 김성재 (金聖在)
| 2002년 7월 11일 ~ 2003년 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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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 이창동 (李滄東)
| 2003년 2월 27일 ~ 2004년 6월 30일
| |
41대
| 정동채 (鄭東采)
| 2004년 7월 1일 ~ 2006년 3월 6일
| |
42대
| 김명곤 (金明坤)
| 2006년 3월 27일 ~ 2007년 5월 7일
| |
43대
| 김종민 (金鍾民)
| 2007년 5월 8일 ~ 2008년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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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국정홍보처장
8.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부
| 대수
| 이름
| 임기
|
44대
| 유인촌 (柳仁村)
| 2008년 2월 29일 ~ 2011년 1월 26일
| |
45대
| 정병국 (鄭柄國)
| 2011년 1월 27일 ~ 2011년 9월 16일
| |
46대
| 최광식 (崔光植)
| 2011년 9월 17일 ~ 2013년 3월 10일
| |
47대
| 유진룡 (劉震龍)
| 2013년 3월 11일 ~ 2014년 7월 16일
| |
48대
| 김종덕 (金鐘德)
| 2014년 8월 20일 ~ 2016년 9월 4일
| |
49대
| 조윤선 (趙允旋)
| 2016년 9월 5일 ~ 2017년 1월 20일
| |
50대
| 도종환 (都鐘煥)
| 2017년 6월 16일 ~ 2019년 4월 2일
| |
51대
| 박양우 (朴良雨)
| 2019년 4월 3일 ~ 2021년 2월 10일
| |
52대
| 황희 (黃熙)
| 2021년 2월 11일 ~
|
[1] 요즘은 아니다. 새천년에 접어들어 통신매체의 발달로 정부의 의견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을 뿐더러, 의견을 표명할 일이 있다면 각당의 대변인이나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등이 직접 말하면 그만이기에. 최근에는 청와대 대변인이 '정부대변인'이라고 인식되고 있다.[2]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법정법인으로 방송통신진흥회가 있는데, 이 기관이 문화방송(MBC)의 대주주이다. 문화방송이라는 네이밍에서 과거 문화부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3] 뉴스통신 진흥에 관한 법률 14조 ②대표이사는 진흥회의 추천을 받아 연합뉴스사의 이사회의 의결로 선임된다. 라는 규정이 있는데 뉴스통신진흥회가 문화부 소관인 이상 입김이 안 들어갈 수가 없는 구조다.[4] 뉴스통신진흥회 임원은 뉴스통신 진흥에 관한 법률 제26조에 따라 이사장 1명 포함 이사 7명과 감사 1명으로 구성되는데, 모든 이사를 대통령이 임명하되, 그 중 3명은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하여 추천한 사람을 임명하고, 2명은 일간신문 발행인을 대표하는 전국 조직과 지상파 방송사업자를 대표하는 전국 조직에서 각각 추천한 사람을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신문업계는 한국신문협회장 등이 될 듯 하고, 방송업계는 한국방송협회장 등이 추천권을 행사하는 구조인 듯하다. 현실적으로 7명의 이사 중 대통령 몫 2명에 교섭단체 중 의원 수가 많은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이 각 1명씩 국회 몫으로 추천하고, 나머지는 신문업계와 방송업계 몫인 셈인데 여권은 기본적으로 대통령과 여당이 7명 중 3명을 확보하고, 야당 중 한 곳과 딜을 하거나 신문협회장을 정부 영향력이 미치기 쉬운 연합뉴스나 서울신문 쪽에서 배출 혹은 방송협회장을 역시 정부 입김이 미칠 수 있는 MBC, KBS, EBS 등에서 배출하면 과반을 달성할 수 있다 .[5] 다른 나라의 경우, 일본 관광청, 필리핀 관광청, 캐나다 관광청, 오스트리아 관광청, 독일 관광청 등처럼 공기업이 아닌 관광 전담 행정관청인 형태로 있는 곳도 있다.[6] 공보부가 문화공보부로 확대되면서 문교부의 문화업무가 문화공보부로 이관되고, 문예체육국이 폐지됨에 따라 설치된 사회교육국에 체육과를 두었다.[7] 공보부가 문화공보부로 확대되면서 문교부의 문화업무가 문화공보부로 이관되고, 문예체육국이 폐지됨에 따라 설치된 사회교육국에 체육과를 두었다.[8] 1994년 건설부와 교통부가 통합하면서 구 교통부 관광국이 문화체육부에 흡수되었다.[9] 1994년 건설부와 교통부가 통합하면서 구 교통부 관광국이 문화체육부에 흡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