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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바를리엔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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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바를리엔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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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마리오 바를리엔
(Mario Varglien) |
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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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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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
출신지
| |
포지션
| 하프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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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조건
| 176cm / 77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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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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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 올림피아 피우메 (1920~1926)
피우마니아[6] (1926~1927) 프로 파트리아 (1927~1928) 유벤투스 (1928~1942) 산레메세 (1942~1943) US 트리에스티나 칼초 (1943~1944) |
국가대표
| 1경기 / 0골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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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산레메세 (1942~1943)
파도바 (1946) US 트리에스티나 칼초 (1946~1947) 코모 1907 (1948~1951) 프로 파트리아 (1951~1952) AS 로마 (1952~1953) |
1. 개요
2. 특징
- 마리오 바를리엔에게도 유벤투스에서 같이 오래 뛴 동생 조반니가 있었다. 그래서 마리오는 통상 바를리엔 Ⅰ, 조반니는 바를리엔 Ⅱ로 불렸다.
3. 생애[7]
3.1. 클럽
바를리엔은 어린 시절부터 여러 운동에서 재능을 보였다. 수중발레, 클래식 댄스, 단거리 달리기, 세단뛰기까지 영역이 미쳤지만 결국 축구를 택했고, 그의 고향인 피우메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올림피아 피우메에서 6시즌을 보내면서 팀이 합병되는 등 여러 부침이 있었고 그 무렵의 바를리엔은 하프백과 인사이드 포워드를 오가며 선수 생활을 했었다. 1927-28 시즌에는 프로 파르티아에서, 1928년에는 유벤투스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바를리엔은 14년간 유벤투스에서 활약하면서 세리에 A 5연패와 2회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의 영예를 안았고, 비안코네리 유니폼과 함께 353게임을 뛰었다.[8] 그리고 1938-39 시즌부터는 루이스 몬티의 뒤를 이어받아 4시즌 간 유벤투스의 주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1942년에는 유벤투스 생활을 정리하고 산레메세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1년간 뛰기도 하였고, 1944년에 트리에스티나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였다.
올림피아 피우메에서 6시즌을 보내면서 팀이 합병되는 등 여러 부침이 있었고 그 무렵의 바를리엔은 하프백과 인사이드 포워드를 오가며 선수 생활을 했었다. 1927-28 시즌에는 프로 파르티아에서, 1928년에는 유벤투스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바를리엔은 14년간 유벤투스에서 활약하면서 세리에 A 5연패와 2회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의 영예를 안았고, 비안코네리 유니폼과 함께 353게임을 뛰었다.[8] 그리고 1938-39 시즌부터는 루이스 몬티의 뒤를 이어받아 4시즌 간 유벤투스의 주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1942년에는 유벤투스 생활을 정리하고 산레메세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1년간 뛰기도 하였고, 1944년에 트리에스티나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였다.
3.2. 국가대표팀
3.3. 감독
4. 플레이 스타일 & 평가
강하고 빠른 스피드를 갖춘 하프백이었다고 전해진다.
5. 수상
5.1. 클럽
5.2. 국가대표
- FIFA 월드컵 우승 1회: 1934
5.3. 감독
- 세리에 B 우승: 1948-49(코모 1907)
[1] 現 크로아티아 리예카(Rijeka)[2] 現 크로아티아 리예카(Rijeka)[3]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4]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5] 1946년에 HNK 리예카로 통합됨.[6] 1946년에 HNK 리예카로 통합됨.[7] 출처: 위키백과[8] 바를리엔이 유벤투스를 떠날 당시에바를리엔의 출장 기록은 잔피에로 콤비의 기록을 깬 팀 내 최다 기록이었다. 하지만 동생 조반니에 의해 그 기록은 깨졌고, 수많은 레전드들이 뒤에 나온 지금 마리오 바를리엔의 유벤투스 팀 내 역대 출장 기록은 20위권 내에도 들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