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루이스 페레스 곤살레스
(Luis Pérez González) |
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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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년월일
| |
국적
| |
출신지
| 산 루이스 포토시 아후알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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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 포워드
|
신체조건
|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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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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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 CD 과달라하라 (?-?)
헤르마니아 FV (?-?) CD 마르테 (1928-1929) 클루브 네칵사 (1929-1943) |
국가대표[4]
| 6경기 / 2골(1930-1937)
|
1. 생애
1.1. 클럽
루이스 페레스는 1908년 멕시코의 아후알룰코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는 CD 과달라하라에서 Pichojos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사촌 토마스 페레스와 함께 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토마스는 교통사고로 일찍 사망하였고, 루이스가 그 별명을 이어받았다.
그는 곧 멕시코시티를 연고로 하는 헤르마니아 FV로 이적했고, 할리스코 대표팀에도 뽑히면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이런 그를 CD 마르테가 데려갔는데 페레스는 마르테에서 1년간 뛰며 첫 우승을 맛보았다.
페레스는 1929년, 클루브 네칵사로 팀을 다시 옮겼고 4회의 우승을 차지하며 클루브 네칵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는 멕시코 축구계가 프로화가 되던 1943년, 축구화를 벗었고 그 이후에는 CD 마르테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다.
그는 곧 멕시코시티를 연고로 하는 헤르마니아 FV로 이적했고, 할리스코 대표팀에도 뽑히면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이런 그를 CD 마르테가 데려갔는데 페레스는 마르테에서 1년간 뛰며 첫 우승을 맛보았다.
페레스는 1929년, 클루브 네칵사로 팀을 다시 옮겼고 4회의 우승을 차지하며 클루브 네칵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는 멕시코 축구계가 프로화가 되던 1943년, 축구화를 벗었고 그 이후에는 CD 마르테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다.
1.2. 국가대표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키가 작고 덩치도 작았지만 기술이 뛰어났다고 한다.
3. 뒷이야기
- 페레스의 네 아들들 모두 클루브 네칵사에서 축구 선수 생활을 했다.
4. 수상
4.1. 클럽
- 프리메라 푸에르사 준우승 1회: 1931-32, 1939-40(클루브 네칵사)
- 코파 멕시코 우승 2회: 1932-33, 1935-36(클루브 네칵사)
- 코파 멕시코 준우승 3회: 1933-34, 1939-40, 1941-42(클루브 네칵사)
4.2. 국가대표
- 중앙아메리카&카리브 해 경기 대회 우승 1회: 1935
[1]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2]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3] 위키백과에서는 7경기 3골이라 기록하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기록되어 있는 1938년 중앙아메리카&카리브 해 경기 대회에서 루이스 페레스의 출전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4] 위키백과에서는 7경기 3골이라 기록하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기록되어 있는 1938년 중앙아메리카&카리브 해 경기 대회에서 루이스 페레스의 출전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5] 올림픽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카리브 해 인근 국가들이 참가했다.[6] 리가 MX는 1943년에 프로화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이전에는 멕시코 내에 다른 여러 아마추어 리그가 존재했는데 그 중 수도인 멕시코시티를 주 연고지로 하는 프리메라 푸에르사가 적통으로 명맥을 잇고, 나머지 리그들은 프리메라 푸에르사에 흡수되는 식으로 전국 리그가 창설되는데 그것이 바로 리가 MX이다. 참고로 fuerza는 힘이라는 뜻이다.[7] 리가 MX는 1943년에 프로화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이전에는 멕시코 내에 다른 여러 아마추어 리그가 존재했는데 그 중 수도인 멕시코시티를 주 연고지로 하는 프리메라 푸에르사가 적통으로 명맥을 잇고, 나머지 리그들은 프리메라 푸에르사에 흡수되는 식으로 전국 리그가 창설되는데 그것이 바로 리가 MX이다. 참고로 fuerza는 힘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