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경력
2.1. 사업
2.2. 정치
1992년 TV쇼 래리 킹 라이브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공약은 균형 재정, 총기규제 반대, 보호 무역 등이었다. 한때 높은 지지율을 받았지만 미국 50개 모든 주(州)에서 후보 등록이 어렵다고 생각해서 출마를 취소했다가, 지지자들이 자발적으로 등록하여 다시 출마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지자를 빌 클린턴에게 거의 빼앗겼다.
1992년 대선에는 18.87%의 득표율을 보였으며, 선거인단은 1명도 확보하지 못했다.[1]
1995년 ‘미국 개혁당’을 창설하고 1996년에 다시 대선에 도전하였지만, 이전보다 낮은 8.40%의 득표율로 다시 낙선했다.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빌 클린턴의 가장 큰 정치적 은인이라고도 볼 수 있다. 2000년, 2004년, 2008년, 2012년 최근 4차례 대선을 보면 공화당이 가장 발린 2008년 대선 오바마 vs 맥케인 때도 공화당 후보 맥케인은 45.7%를 득표했는데, 92년 공화당 부시는 37.5%, 96년 밥 돌은 40.7%를 얻는데 그쳤기 때문. 반면에 클린턴은 92년에 43.0% 96년에 49.2%를 얻으며 당선했다.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미국 개혁당에서 패트릭 뷰캐넌을 후보로 내놓았지만,[2] 이전보다 더욱 낮은(…) 득표율을 보였으며 미국 녹색당의 랄프 네이더에게 밀려 제4위로 추락했다. 로스 페로는 이 책임을 지고 개혁당을 떠났다.
1992년 대선에는 18.87%의 득표율을 보였으며, 선거인단은 1명도 확보하지 못했다.[1]
1995년 ‘미국 개혁당’을 창설하고 1996년에 다시 대선에 도전하였지만, 이전보다 낮은 8.40%의 득표율로 다시 낙선했다.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빌 클린턴의 가장 큰 정치적 은인이라고도 볼 수 있다. 2000년, 2004년, 2008년, 2012년 최근 4차례 대선을 보면 공화당이 가장 발린 2008년 대선 오바마 vs 맥케인 때도 공화당 후보 맥케인은 45.7%를 득표했는데, 92년 공화당 부시는 37.5%, 96년 밥 돌은 40.7%를 얻는데 그쳤기 때문. 반면에 클린턴은 92년에 43.0% 96년에 49.2%를 얻으며 당선했다.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미국 개혁당에서 패트릭 뷰캐넌을 후보로 내놓았지만,[2] 이전보다 더욱 낮은(…) 득표율을 보였으며 미국 녹색당의 랄프 네이더에게 밀려 제4위로 추락했다. 로스 페로는 이 책임을 지고 개혁당을 떠났다.
2.2.1.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1992 - 1995
| 정계 입문
| |
1995 - 2000
| 창당
| |
2000 - ?
| 2000년 대통령 선거 결과를 책임지고 탈당 후 입당
정계 은퇴 | |
? - 2019
| 탈당
|
2.2.2. 정치 이력
||<tablealign=center><rowbgcolor=#eb612a><tablebordercolor=#eb612a><tablebgcolor=#fff,#191919>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필요시 선거인단) || 당선 여부 || 비고 ||
2.3. 군사
위의 것들에 비하면 덜 알려진 것이지만, 그의 정치적 영향력이 주목받는 이유 중에는 군사분야와 관계된 일화들이 존재한다. 가령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으로 인해 자사 직원들이 고립되었을 때 구출한 것이라든지. 카터와 레이건에게서 백안시된 미 특수전 전력들을 위로한 인물이란 점이 위 선거 결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