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고바르드 왕국
Regnum Langobardorum Regnum totius Italiae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Italien_zur_Langobardenzeit.jpg
랑고바르드의 세력권. 주황색이 랑고바르드족, 분홍색은 동로마 제국이다. | ||
존속기간
| 568년 ~ 774년
| |
위치
| ||
티치눔(파비아)
| ||
국가원수
| 왕
| |
주요 국왕
| 알보인(568~572)
리우트프란드(712~744) | |
랑고바르드어, 라틴어
| ||
종족
| 랑고바르드족, 이탈리아 로마인
| |
성립 이전
| ||
멸망 이후
| ||
언어별 명칭
| ||
Regnum Langobardorum
/ Regnum totius Italiae | ||
Regno longobardo
| ||
롬바르디아어[2]
| Regn dei Lombards
| |
Royaume lombard
| ||
Βασίλειο των Λομβαρδών
| ||
Kingdom of the Lombards
| ||
1. 개요
2. 역사
2.1. 이탈리아 점령
546년 랑고바르드족의 왕 아우도인은 즉위하자마자 기존의 체계를 정비하며 차근차근 세력을 불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566년 즉위한 알보인 왕은 주변의 경쟁 민족인 게피데족의 왕국을 아바르족과 협공해서 멸망시켜 게피다이 왕의 해골로 술잔을 만들고 왕의 딸을 첩으로 취한다. 568년 줄리안은 알프스 지역을 정복하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당시 혼란하였던 이탈리아 북부를 침공하여 그곳을 정복해낸다. 이탈리아 반도는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동고트 왕국이 지배하였지만 동로마 제국과의 일전일퇴의 밀고 밀리는 기나긴 공방전 끝에 전 이탈리아가 황폐해지고 전염병까지 돌았기 때문에 손쉽게 넘어갔다. 그리고 북부 이탈리아의 중심 도시였던 파비아를 정복하고서는 그곳을 수도로 삼고 572년 공식적으로 랑고바르드 왕국을 건국한다.
2.2. 위기
그러나 알보인왕이 수도를 정하고 국가를 건국한 그해에 자신이 강간한 게피데 왕 쿠니문드의 딸 로자문드에게 살해당했다. 그 사후 573년 클레프가 왕으로 즉위하였지만 겨우 1년 만에 요절하였고 휘하 봉신들은 왕을 선출하기를 거부하여 왕없는 왕국이 되어버린다. 그렇지만 584년 프랑크족이 쳐들어오자 부랴부랴 클레프의 아들 아우타리를 즉위시킨다.
2.3. 중흥과 전성기
그렇게 8세기까지 살아남은 랑고바르드족은 로마 문화와 게르만 문화를 융합시키며 나름대로의 태평성대를 이루어갔다. 그러던중 712년 리우프란트가 역성혁명[3]을 일으켜 즉위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리우프란트는 아리우스파에서 가톨릭으로 완전 개종해 왕권을 강화시키고 적극적인 영토 확장에 나섰고 이탈리아의 중북부를 차지했던 왕국을 이탈리아 거의 전체를 집어삼킨 왕국으로 거듭케한다.[4]
751년 랑고바르드 왕국이 라벤나를 점령한 이후 이탈리아 반도의 모습
| |
회색
| 랑고바르드 왕국
|
주황
| 동로마 제국
|
2.4. 멸망
3. 왕사
이름
| 재위기간
|
알보인 Alboin
| 565 - 572
|
클레프 Cleph
| 572 - 574
|
대공위시대 Interregnum
| 574 - 584
|
아우타리 Authari
| 584 - 590
|
아길루프 Agilulf
| 591 - 616
|
아달랄트 Adaloald
| 616 - 626
|
아리알트 Arioald
| 626 - 636
|
로타리 Rothari
| 636 - 652
|
로달트 Rodoald
| 652 - 653
|
아리페르트 1세 Aripert I
| 653 - 661
|
페르타리트/고데페르트 Perctarit/Godepert
| 661 - 662
|
그리말트 Grimuald
| 662 - 671
|
가리발트 Garibald
| 671
|
페르타리트 Perctarit
| 671 - 688
|
알라히스 Alahis
| 688 - 689
|
쿠닝페르트 Cunincpert
| 688 - 700
|
리우페르트 Liutpert
| 700 - 701
|
라긴페르트 Raginpert
| 701
|
아리페르트 2세 Aripert II
| 701 - 712
|
안스프란트[8] Ansprand
| 712
|
리우프란트[10] Liutprand
| 712 - 744
|
힐데프란트 Hildeprand
| 744
|
라치스 Ratchis
| 744 - 749
|
아이스툴프[12] Aistulf
| 749 - 756
|
데시데리우스 Desiderius
| 756 - 774
|
4. 후예
랑고바르드족의 랑고바르드 왕국은 여기서 멸망하였지만 북부 이탈리아는 프랑크족 휘하에서도 롬바르드 왕국으로 불리기도 했다. 일부 지역은 현재의 롬바르디아로 불리게 된다.
이탈리아의 중남부 랑고바르드족들은 프랑크 제국의 반속국 상태에서 베네벤토 공국, 스플레토 공국, 살레르모 공국 등으로 여명을 유지했지만 11세기 말엽, 노르만족의 도래로 정복되어 시칠리아 왕국에 흡수된다.
이탈리아의 중남부 랑고바르드족들은 프랑크 제국의 반속국 상태에서 베네벤토 공국, 스플레토 공국, 살레르모 공국 등으로 여명을 유지했지만 11세기 말엽, 노르만족의 도래로 정복되어 시칠리아 왕국에 흡수된다.
[1] 롬바르디아는 그 땅을 장악했던 랑고바르드족에서 나온 말이지만 현대 롬바르디아어는 이탈리아어와 가까운 로망스어군이고 게르만어파가 아니다.[2] 롬바르디아는 그 땅을 장악했던 랑고바르드족에서 나온 말이지만 현대 롬바르디아어는 이탈리아어와 가까운 로망스어군이고 게르만어파가 아니다.[3] 사실 서고트 왕국급 이상으로 왕권이 약한 랑고바르드 왕국의 사정상 역성혁명이나 왕조교체는 흔한 일이었다.[4] 대부분은 말을 안 들어먹는 중남부의 사실상 독립국인 랑고바르드계 공국을 무력으로 통합한 것이다. 동로마 제국이 이탈리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발판인 라벤나 총독부는 이미 보잘 것 없이 줄어들 대로 줄어든 상태였다.(로마냐 일대와 남부 지역 일부만 통제할 정도였다.)[5] 다만 총독부의 영토 중 칼라브리아와 아풀리아 일대는 1071년 노르만족에게 빼앗길 때까지 동로마 제국의 영토로 남는다.[6] 당시엔 교황이 아니라 로마 대주교로 대주교가 다스리던 지역 이름은 로마 공국이었다. 라벤나 총독부가 멸망하면서 사실상 동로마 제국과 단절된 상태였다. 교황령이 정식으로 수립된 건 프랑크 왕국의 피핀 3세가 라벤나 일대를 교황에게 증여한 754년이다.[7] 아리페르트 2세의 아들. 부왕에게 항거하여 바이에른으로 쫓겨갔지만, 이후 바이에른 군대를 몰고 와 왕위를 찬탈했다. 랑고바르드족의 기독교 개종을 시도했다.[8] 아리페르트 2세의 아들. 부왕에게 항거하여 바이에른으로 쫓겨갔지만, 이후 바이에른 군대를 몰고 와 왕위를 찬탈했다. 랑고바르드족의 기독교 개종을 시도했다.[9] 중흥기 항목의 설명처럼 선대 안스프란트를 축출하고 왕위에 올랐다. 동로마 세력의 일소를 꾀했고 베네벤토, 스폴레토 공령의 반란을 격퇴해 직할령으로 삼았다.[10] 중흥기 항목의 설명처럼 선대 안스프란트를 축출하고 왕위에 올랐다. 동로마 세력의 일소를 꾀했고 베네벤토, 스폴레토 공령의 반란을 격퇴해 직할령으로 삼았다.[11] 교황령 무력 흡수를 노렸으나 프랑크 왕국의 피핀 3세에게 격파되었다.[12] 교황령 무력 흡수를 노렸으나 프랑크 왕국의 피핀 3세에게 격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