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ກີບ, ອັດ(보조단위, 라오어), Kip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2px-Royal_Coat_of_Arms_of_Laos.svg.png
라오스의 법적 통화. ISO 4217코드는 LAK, 기호는 ₭로 표기한다.취소선이 필수요소. 보조단위로 "앗(Att)"이 있지만 환율이 무진장 낮기 때문에(2017년 11월 25일 현재 8,324.48킵/USD[1]) 사실상 쓰일 일은 없다.
인플레는 8.49%(2008년), 3.92%(2009년), 6.80%(2010년)으로 높지는 않지만 상당히 들쭉날쭉하다. 돈이 잘 돌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상 역으로 해석하면 발전이 없는 셈이고 정으로 해석하면 매우 심각하게 흔들리는 상황. 대개 이런막장 통화의 경우는 미국달러나 주변국 통화(태국 바트, 베트남 동, 중국 위안)의 위세에 밀리기 마련이지만[2], 킵의 경우는 정부의 끊임없는 광고와 노력 덕에 2010년 이후부터 달러 사용량을 밀어내고 적극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여전히 저 4가지 통화가 돌아다니기는 한다.
독립 이전인 1945년부터 임시정부측이 발행한 통화[3] 및 1952년 발행한 로얄 킵[4], 그리고 독립 직후 1953년에 발행한 인도차이나 발행권[원어]이라는 것이 존재했지만, 실질적으론 1957년 시리즈를 최초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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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법적 통화. ISO 4217코드는 LAK, 기호는 ₭로 표기한다.
인플레는 8.49%(2008년), 3.92%(2009년), 6.80%(2010년)으로 높지는 않지만 상당히 들쭉날쭉하다. 돈이 잘 돌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상 역으로 해석하면 발전이 없는 셈이고 정으로 해석하면 매우 심각하게 흔들리는 상황. 대개 이런
독립 이전인 1945년부터 임시정부측이 발행한 통화[3] 및 1952년 발행한 로얄 킵[4], 그리고 독립 직후 1953년에 발행한 인도차이나 발행권[원어]이라는 것이 존재했지만, 실질적으론 1957년 시리즈를 최초로 보고 있다.
2. 1기
2.1. 1차
1957년 등장. "라오스 왕국"이던 시절에 발행한 킵이라 도안으로 시사왕웡왕(King Sisavang Phouli-Vong)의 얼굴을 박아넣었다.
앞면
|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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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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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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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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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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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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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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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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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50킵은 자체발행, 100킵은 프랑스은행, 500킵은 영국 데라루에서 발행했기에 서로 제각기 스타일이 다르다.
- 동전의 경우 알루미늄제 10, 20, 50앗이 발행되었지만... 딱 한 번만 만들고 생산을 멈췄다.
2.2. 2차, 3차
선대 왕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3년 후인 1962년 돌연 만들어지게 되었다. 사왕바타나왕(King Savang Vatthana), 및 수완나푸마(Souvanna Phouma, 2~3차[6])왕의 얼굴이 들어가 있다. 2차 권종 생산 11년 후인 1974~5년이 되어야 10, 1000킵 개정판과 100, 500, 5000킵이 만들어지며 채워졌다.(여기에 수완나푸마가 들어가기 때문에, 3차로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정판 2종은 세상빛을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사장되어버렸다. 바로 라오스 내전이다.
2차 발행분
| 앞면
|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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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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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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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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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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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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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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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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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발행분
| 앞면
|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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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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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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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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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쿠앙 시(Kuang Si)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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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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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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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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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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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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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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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개정 발행분
| 앞면
|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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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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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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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기
공산당 소속인 "파테트 라오(조국 라오스)"조직이 아직 인민민주공화국으로 발전하기 이전에 내놓은 시리즈이다. 등장은 별도로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1974년 ~ 1976년으로 추정된다. 화폐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전형적인 공산당풍 소형지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종류는 총 7종이다. 참고로 중국산이며, 동전은 없었다. 1기와의 교환비는 1(신) : 20(구). 대부분이 장미빛 미래를 암시하는 인민선전용 풍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앞면
|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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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추수 풍경
| 보건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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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보건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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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배급소 풍경
| 협동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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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 산업 공장
| 소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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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전통선을 이용한 어로 작업
| 옷 짜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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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 징용 작업(으로 추정)
| 섬유 공장
| |
₭500
| 수확중인 논
| 라오스 내전 풍경
| |
4. 3기
라오스 인민 민주공화국이 세워진 이후의 시리즈. 2기(파테트 라오) 킵과의 교환비는 1(신):100(구)이다. 특별히 개혁이나 대대적인 교환형태를 취하지 않고, 기본인 1킵부터 꾸준히 고액권이 등장하며 있던것이 사라지고 하는 순환형태로 발행되었다. 크게 나누면 2012년 현재 3개 세대로 나눌 수 있다. 동전도 발행되기는 하였으나(1980년 10, 20, 50앗 / 1985년 1, 5, 10, 20, 50킵), 만성적인 인플레덕에 금방 밀려버려 사용이 끊겨버렸다.
현재는 500킵 및 1000킵을 잔돈처리용, 2,000킵(약 280원)부터를 현금으로 취급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500킵 미만은 그대로 공기화. 거지에게 던져줘도 안 받는다.
현재는 500킵 및 1000킵을 잔돈처리용, 2,000킵(약 280원)부터를 현금으로 취급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500킵 미만은 그대로 공기화. 거지에게 던져줘도 안 받는다.
1979년 발행
| 앞면
| 뒷면
|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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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상점 풍경
| 코끼리가 나무 운반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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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나무 자르는 모습
| 병원에서 수술이 진행되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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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직물 생산
| 라오스인민해방군의 전차(T-55)와 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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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 벼 수확
| 댐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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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발행
| 앞면
| 뒷면
| |
₭100
| 벼 수확
| 메콩강 우호교와 석유정제설비
| |
₭500
| 근대식 관개설비
| 과일수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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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발행
| 앞면
| 뒷면
| |
₭1,000
| 라오족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 3인조와 파탓루앙[8]
| 물소 목장
| |
(2008년 개정판)[10]
| 시멘트공장
| ||
₭2,000
| 카이손 폼비한 라오스 인민혁명당서기장과 파탓루앙
| ||
₭5,000
| 근대식 곡물창고 설비
| ||
2002~2010년 발행
| 앞면
| 뒷면
| |
₭10,000
| 카이손 폼비한 라오스 인민혁명당서기장과 파탓루앙
| ||
₭20,000
| (메콩강 유역의 댐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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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0
| 국립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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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0[15]
| 나가(Naga) 신상, 세타틸랏(파탓루앙을 건축한 왕) 동상, 푸루메리아, 파탓루앙
| 호파케오 사당[16]
| |
2011년 발행
| 앞면
| 뒷면
| |
₭2,000
| 카이손 폼비한과 시엥 통(Xieng Thong) 사원
| 세세트 제 2 수력발전소
| |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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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개 7천~8천킵대에서 왔다갔다한다.[2] 실제로 달러가 우세이다[3] 비공식 게릴라성 통화.[4] 전신인 프랑스령 인도네시아 피아스트를 교체하기 위한 통화이다.[원어] Institut d'Emission des Etats du Cambodge du Laos et du Vietnam. 보다시피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을 한꺼번에 묶은 통화다.[6] 엄밀하게는 왕이 아니라 수상에 가깝다. 그래도 나름 왕자라서 왕대접 해주는 것이다.[7] ພຣະທາດຫຼວງ, Pha That Luang. 수도 비엔티안에 있는 크메르 황금 불교사원. 한때 태국이 개발살냈었기 때문에, 현재 세워져 있는 것은 재건축한 것이다.[8] ພຣະທາດຫຼວງ, Pha That Luang. 수도 비엔티안에 있는 크메르 황금 불교사원. 한때 태국이 개발살냈었기 때문에, 현재 세워져 있는 것은 재건축한 것이다.[9] 그러나 1년만에 짤렸다. 미인박명[10] 그러나 1년만에 짤렸다. 미인박명[11] 라오스 남부 참빠삭 주의 도시. 빠삭하구나 한때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참빠삭 왕국이 세워지던 곳이나, 라오스 왕국이 만들어지면서 패망했다.[12] 라오스 남부 참빠삭 주의 도시. 빠삭하구나 한때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참빠삭 왕국이 세워지던 곳이나, 라오스 왕국이 만들어지면서 패망했다.[13] 비앙티엔 건립 450주년 및 라오 민주공화국 건국 35주년 기념권이다.[14] 에메랄드 불상을 모시기 위한 불교 사원. 지금은 박물관이 되었다.[15] 비앙티엔 건립 450주년 및 라오 민주공화국 건국 35주년 기념권이다.[16] 에메랄드 불상을 모시기 위한 불교 사원. 지금은 박물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