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농민 운동
西山農民運動 | ||
시기
| 1771년 ~ 1777년 (1차)
1786년 ~ 1787년 (2차) 1787년 ~ 1802년 (3차) | |
장소
| 대월 북부
대월 전역 | |
원인
| 광남국의 학정
| |
교전국
| 1차
| |
2차
| ||
지휘관
| ||
병력
| 병력 규모 불명
| 병력 규모 불명
|
피해
| 미상
| 정권 붕괴
|
결과
| 찐씨 축출, 떠이선 왕조 성립
| |
영향
| 대월 통일
떠이선 당의 실권 장악 | |
1. 개요
2. 전개
2.1. 발단
2.2. 떠이선 왕조의 성립
2.3. 대월 통일
2.4. 떠이선의 분할 통치와 멸망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떠이선 왕조의 쇠퇴
잠시 내전이 벌어졌지만 두 형제의 합의로 북쪽은 광중제가, 남쪽은 태덕제가 통치하는 식으로 분할통치를 마련하였다. 이후 광중제의 뒤를 이은 경성제가 태덕제를 배반하고 귀인을 공격해 다시 서산을 통일했지만 살아남은 완씨 일족중 한명인 완복영이 피뇨[3]의 도움으로 1802년 떠이선의 수도 탕롱을 함락함으로써 할거하던 떠이선 세력이 몰락했고 떠이선 일족들은 멸족당했다.
잠시 내전이 벌어졌지만 두 형제의 합의로 북쪽은 광중제가, 남쪽은 태덕제가 통치하는 식으로 분할통치를 마련하였다. 이후 광중제의 뒤를 이은 경성제가 태덕제를 배반하고 귀인을 공격해 다시 서산을 통일했지만 살아남은 완씨 일족중 한명인 완복영이 피뇨[3]의 도움으로 1802년 떠이선의 수도 탕롱을 함락함으로써 할거하던 떠이선 세력이 몰락했고 떠이선 일족들은 멸족당했다.
3. 결과
서산조가 멸망시키고 다시 고토를 수복한 완복영이 칭제하여 베트남 최후의 왕조인 응우옌 왕조가 성립되었으며 1802년 서산조가 멸망한 시점을 공식적인 대월의 멸망으로 본다.
또한 새로이 들어온 응우옌 왕조는 외세의 힘을 빌려 난을 평정했기 때문에 프랑스의 간섭이 잦았고 이는 후일 프랑스 식민지 통치의 발단이 되었다.
또한 새로이 들어온 응우옌 왕조는 외세의 힘을 빌려 난을 평정했기 때문에 프랑스의 간섭이 잦았고 이는 후일 프랑스 식민지 통치의 발단이 되었다.
4. 의의
왕조의 기반체제가 완전히 확립된 18세기 중 동아시아 유일하게 기존 왕조를 뒤엎고 새로운 왕조를 세운 유일한 사례이다. 떠이선 당의 난은 베트남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농민봉기이며 세금 감면 정책과 외세의 군대를 막아내 자주국가의 위신을 획득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