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 9대 황제
同慶 동카인 | Dong Khanh | ||
묘호
| 경종(景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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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 배천명운효덕인무위공홍렬총통철민혜순황제
(配天明運孝德仁武偉功弘烈總統哲敏惠純皇帝)[2] | |
능호
| 사릉(思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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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
| 동카인(同慶/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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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 응우옌(Nguyễn, 阮/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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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 푹비엔(Phúc Biện, 福昪/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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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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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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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통칭 순황제.[2] 통칭 순황제.[3] 프랑스는 함의제와 함께 반불운동에 나섰던 똔텃투옛 및 응우옌반뜨엉을 급히 체포하여 먼저 꼰다오 제도로 유배보냈고 끝까지 저항하던 똔텃투옛의 두 아들들은 프랑스에의해 즉결사형에 쳐해졌다. 이후 똔텃투옛은 청나라 광시성으로 추방당했고 응우옌반뜨엉은 프랑스에의해 프랑스령 타히티 제도로 유배당한다.[4] 똔텃투옛과 응우옌반뜨엉이 이때 새로이 내각이 생긴 베트남조정에 의하여 대역죄인으로 찍혔는데 프랑스의 압박도 있었겠지만 그동안 저 대신들이 2명의 황제(죽득황제,히엡호아 황제)를 맘대로 죽이고 황위를 갈아치우고 한 꼴을 보면 황실입장에서는 당연히 대역죄인이기도 하고 뜨득황제의 왕비와 간통하는 등 막장 세도정치를 펼치고있었다. 2명의 대신들이 반불독립운동가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황실을 기만한 권신이라는점에서 현대 베트남 사학계에서 그렇게 좋은평가를 받지는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