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위
| 고추가(古鄒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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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 고(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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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돌고(咄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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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 미천왕(美川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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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왕
| 서천왕(西川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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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연도
| ? ~ 2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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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돌고의 형인 봉상왕은 성격이 교만하면서도 의심이 많은 성격을 지니고 있어 늘 주위 사람들을 의심하였는데, 특히 자신의 친족들을 의심하였다. 봉상왕의 이러한 행동은 292년에 자신의 숙부이자 전쟁 영웅으로 칭송받던 안국군 달가를 시기하여 죽인 이후로 더욱 거침없이 표출되었다.[2]
293년, 봉상왕은 자신의 아우였던 돌고마저 의심하던 중에 돌고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면서 독약을 내려서 자결하도록 하였다. 결국 돌고는 죄가 없음에도 죽게 되었는데, 당시 고구려 사람들은 돌고의 억울함을 잘 알고 있어서 돌고의 죽음을 애통해하였다고 한다.
그의 아들인 을불은 아버지가 죽자 화를 피해 달아나서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7년 동안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았다.[3] 후에 봉상왕의 폭정을 보다 못한 국상 창조리가 봉상왕을 폐한 후에 을불을 다시 궁궐로 데려와서 왕으로 추대하니 그가 바로 미천왕이었다.
293년, 봉상왕은 자신의 아우였던 돌고마저 의심하던 중에 돌고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면서 독약을 내려서 자결하도록 하였다. 결국 돌고는 죄가 없음에도 죽게 되었는데, 당시 고구려 사람들은 돌고의 억울함을 잘 알고 있어서 돌고의 죽음을 애통해하였다고 한다.
그의 아들인 을불은 아버지가 죽자 화를 피해 달아나서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7년 동안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았다.[3] 후에 봉상왕의 폭정을 보다 못한 국상 창조리가 봉상왕을 폐한 후에 을불을 다시 궁궐로 데려와서 왕으로 추대하니 그가 바로 미천왕이었다.
[1] 고추가는 고구려의 왕족과 귀족의 칭호다. 오등작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면 좋을듯[2] 사실 달가가 죽은 이유는 사람들에게 너무 인기가 많았던 것도 한 몫하였다(...).[3] 그래도 왕의 조카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머슴 노릇에 소금장수까지 하며 하루하루를 간신히 연명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정작 을불 본인은 오히려 그 생활이 봉상왕의 눈을 피할 수 있다는 것에 다행스럽다고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