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의 왕자
담양군 潭陽君 | ||
담양정(潭陽正) → 담양군(潭陽君)[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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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간(懷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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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全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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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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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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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모
| 신빈 김씨(愼嬪 金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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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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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1남[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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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금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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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기간 | ||
1. 개요
2. 생애
3. 사후
4. 가족과 후손
중추원부사 남경우의 딸과 약혼했으나 결혼 직전에 담양군이 사망하여 혼사는 없었던 일이 되었다.
이 때 남경우의 딸이 상복을 입을지 말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예송논쟁 예조에서는 남경우의 딸은 이미 납채[8], 납폐[9], 친영[10]하는 날까지 정했으니 당연히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공조판서 정인지는 날만 정했을 뿐, 납채와 납폐를 행하지 않았으니 상복을 안 입어도 괜찮다고 주장했다. 결론은 남경우의 딸은 상복을 입지 않는 것으로 났다.#
남경우의 딸은 문종의 명으로 다른 사람과 혼인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남경우의 딸은 훗날 소헌왕후의 아버지 심온의 증손자 심미와 혼인하였다.
담양군의 상례 때는 태조의 장남 진안대군의 증손자인 강음령 이은생(江陰令 李銀生)이[11] 상주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잠시 상주를 맡았을 뿐, 담양군의 양자가 되지는 않았다.
정식 양자로는 담양군의 친형 계양군의 2남인 강양군 이숙(江陽君 李潚)이 지명받았다. 강양군은 적 · 서자 합쳐서 5남 4녀를 두었고#, 이들의 후손이 번성하여 오늘날의 전주 이씨 담양군파를 형성하고 있다.
남경우의 딸은 문종의 명으로 다른 사람과 혼인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남경우의 딸은 훗날 소헌왕후의 아버지 심온의 증손자 심미와 혼인하였다.
담양군의 상례 때는 태조의 장남 진안대군의 증손자인 강음령 이은생(江陰令 李銀生)이[11] 상주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잠시 상주를 맡았을 뿐, 담양군의 양자가 되지는 않았다.
정식 양자로는 담양군의 친형 계양군의 2남인 강양군 이숙(江陽君 李潚)이 지명받았다. 강양군은 적 · 서자 합쳐서 5남 4녀를 두었고#, 이들의 후손이 번성하여 오늘날의 전주 이씨 담양군파를 형성하고 있다.
[1] 군호는 전라도 담양군(潭陽郡)에서 유래했다.[2] 군호는 전라도 담양군(潭陽郡)에서 유래했다.[3] 본문 참조[4] 본문 참조[5] 친형인 계양군(桂陽君)의 차남 강양군(江陽君)[6] 친형인 계양군(桂陽君)의 차남 강양군(江陽君)[7] 세는나이 13세.[8] 納采. 전통혼례에서 남자집에서 혼인을 하고자 예를 갖추어 청하면 여자집에서 이를 받아들이는 혼례 의식.[9] 納幣. 납채 뒤 정혼의 성립을 나타내기 위해 신부집으로 서신과 폐물을 보내는 혼례 의식.[10] 親迎. 신랑이 신부집에서 신부를 맞아와 자신의 집에서 혼인을 진행하는 혼례 의식.[11] 훗날 가음령(嘉音令)을 거쳐 가음정(嘉音正)으로 승격 개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