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
2. 상세
명대 말의 학자 황종희(黃宗羲)가 무당의 도인으로 알려진 장삼봉에 대해 서술하면서 내가권에 대한 언급을 남긴 것이 최초의 기록으로 여겨지며, 국내 기록으로 무예도보통지가 이에 대해 서술하고 있기도 하다.
당송(唐宋)이래 그 기술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외가(外家)이고 하나는 내가(內家)이다. 외가는 소림(少林)【소림사는 등봉현(登封縣) 소실산(少室山)에 있다. 『일지록(日知錄)』에 이르기를, ‘당나라 초기에 이 절의 승려 13인이 왕세충(王世充)을 토벌하여 공이 있었는데, 이것이 소림병이 일어난 바이다. 가정(嘉靖) 연간에 소림사 승려 월공(月空)이 도독 만표(萬表)의 격문을 받고 송강(松江)에서 왜적을 막다가 전사하였다.’한다.】이 융성한 것이고, 내가는 장송계(張松溪)가 정통이다. 송계의 사손(師孫)은 13노(老)인데, 그 법은 송나라 때의 장삼봉(張三峯)에 의해서 일으켜졌다. 삼봉은 무당(武當)【당나라 균주(均州)의 속현. 송나라 때에는 무당군(武當軍)에 속하였다.】의 단사(丹士)【단을 만드는 술사, 즉 도사(道士)】로서 혼자 적 백여 명을 죽였다. 드디어 절기(絶技)로서 세상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삼봉으로 말미암아서 뒤에 명나라 가정(嘉靖) 때에 이르러 사명(四明)【산 이름. 영파부에 있다.】에 전하여졌는데 송계(松溪)가 제일이었다.
『영파부지(寧波府志)』에 이르기를, “소림법(少林法)은 사람을 치고 솟구치며 뛰며 분기하여 뛰어넘는 것을 위주로 하는데, 혹 잃어버리고 소홀히 되었다. 때문에 가끔씩 사람들이 꾀하는 바가 되었다. 송계법(松溪法)은 적을 방어하는 것을 위주로 하며 곤액(困厄)을 당하지 않으면 술법을 발휘하지 않는다. 발휘하면 마땅히 반드시 쓰러뜨리는 바 가히 꾀할 틈을 없게 한다. 때문에 내가의 술법이 더 좋다. 사람을 치는 데는 반드시 그 혈로써 하는데, 훈혈(暈血)․아혈(啞血)․사혈(死血)이 있다. 그 혈을 가려서 가볍게 또는 무겁게 치면, 혹 죽기도 하고, 혹은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하고, 혹은 벙어리가 되기도 하는데, 털끝만큼도 차이가 없다. 더욱이 신비한 것은 경(敬)․긴(緊)․경(徑)․근(勤)․절(切)의 다섯자 비결은 입실(入室) 제자가 아니면 서로 전수하지 않으니, 대개 이 다섯자는 일반적으로 쓰지 않고, 그 쓰임을 신비하게 하는 바 오히려 병가의 인(仁)․신(信)․지(智)․용(勇)․엄(嚴)과 같다고 할 것이다.” 하였다.
내가권법(內家拳法)에 이르기를, “외가로부터 소림에 이르러 그 술법이 정교해졌다. 장삼봉은 이미 소림보다 정교하지만 다시 따르고 뒤집어 이를 이름하여 내가라 하였다. 그 한 두 가지만 터득하여도 이미 넉넉히 소림을 이길 만하다. 왕정남(王征南) 선생이 단사남(單思南)에게 따라 배워서 홀로 그 전부를 터득하였다. 내가 양식을 싸들고 먼길을 다니며 배워보니, 그 요체는 즉 단련에 있었다. 단련이 이미 성숙해지면 돌아볼 필요 없이 주위 사정을 헤아려 손을 펴 전후종횡으로 응하여 모두 긍계(肯棨)를 만나게 된다. 그 단련법에는 손을 단련시키는 것이 35가지, 발을 단련시키는 것이 18가지가 육로(六路)와 십단금(十段錦)【무릇 가결(歌訣)은 십 수가지가 되는데, 총칭하여 십단금이라 한다.】에 포함되어 있는데 각기 가결(歌訣)이 있다.[3]
그러나 이 서술은 현재의 외가, 내가의 뜻과는 다르며 외가는 외래 유입인 불교, 내가는 내수인 도교라는 구분에 가깝다고 보는 듯 하다. 관련문서 현재의 외/내가 구분은 20세기 즈음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