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근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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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봉근(金奉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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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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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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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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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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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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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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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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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경력
2.1. 선수 시절
2.2. 지도자 시절
은퇴 직후부터 여러 팀을 돌아다니며 투수코치로 더 유명해지게 된다. 처음에는 롯데(1993-1998), 그 다음엔 삼성(1999-2000), 그리고 김성한 감독 밑에서 기아 타이거즈의 코치를 맡았다.
(이하 내용은 김 코치의 스포츠 2.0의 인터뷰를 본 후 그 기억만 가지고 쓴 글이라 다소 편향적일 수 있음)
투수코치로서 김봉근 코치는 주로 초반에 구속을 높이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해 오던 폼을 자신의 폼에 크게 변화를 주지 않되 구속을 높일 수 있고 부상을 방지할 수 있도록 투수의 부족한 부분을 교정을 해 주면 고교 때보다 보통 2~3km/h, 최고 5km/h 정도까지 구속의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고 하며, 코치로 처음 활동한 1990년대 초반부터 체인지업[1]에 크게 관심을 보였고 대부분의 투수들에게 체인지업을 꼭 가르친다고 한다.
구단 입단 후에 들어온 유망주들을 대상으로 직구 구속을 높임으로서 파이어볼러들을 양성하고, 손목이나 팔꿈치, 어깨 등에 무리가 덜 가고 직구 구속 저하와 영향이 적은 체인지업을 가르치는 것인데, 직구 - 체인지업의 두 구종만으로도 수싸움만(빠른공 - 느린공) 잘 해 주어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으며 투수의 부상을 덜 수 있다는 점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또한 1990년대부터 투수의 부상방지를 위해[2] 투구수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였고, 그로 인해 투수를 혹사하는 유형의 감독들과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고 한다.
처음에 김성한 감독 시절 (2001-2001년) KIA의 투수코치로 있다가, 투수를 혹사하는 김성한과 충돌을 빚고 SK로 가서 조범현 감독 밑에서 투수코치를 했다. 이후 조범현 SK감독이 물러나자 다시 KIA로 돌아와 서정환 감독 밑에서 투코를 했으나, 이 때(2007년) 야인으로 있던 조범현 감독을 개인적 친분으로 KIA의 배터리 코치로 시즌중 영입하는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후 서정환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물러났고, 야구인들의 예상대로 조범현 감독이 기아 감독으로 부임하자 계속 함께 갈 것 같았으나, 2009년 시즌 중 2군으로 좌천되었고, 2009년 기아 우승 직후 조범현 감독에 의해 해임된다. 모종의 의견 충돌이 있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나 확실한 건 두 사람만 아는 것이라서..
KIA 타이거즈 팬들은 KIA의 암흑기에 서정환 감독을 깔 때 같이 까는 경향이 강하지만 꼴찌를 한 시즌에도 기아의 마운드는 리그 4위 수준의 준수한 마운드였으며, 09년에 보여준 기아 팜의 수많은 파이어볼러들에게 있어 김봉근 코치의 영향이 크다는 것은 간과하는 것 같긴 하다.기아 팬들이 원하는대로 김봉근 코치가 나가니 데스기모토가 오더라
야인으로 있다가 2013년 10월 7일 kt wiz의 투수코치로 임명되었다.조범현과 함께 한 것이 이번이 몇번째냐??
그러나 2015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했다.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2019년 강릉영동대 코치를 맡게 됐다.
(이하 내용은 김 코치의 스포츠 2.0의 인터뷰를 본 후 그 기억만 가지고 쓴 글이라 다소 편향적일 수 있음)
투수코치로서 김봉근 코치는 주로 초반에 구속을 높이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해 오던 폼을 자신의 폼에 크게 변화를 주지 않되 구속을 높일 수 있고 부상을 방지할 수 있도록 투수의 부족한 부분을 교정을 해 주면 고교 때보다 보통 2~3km/h, 최고 5km/h 정도까지 구속의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고 하며, 코치로 처음 활동한 1990년대 초반부터 체인지업[1]에 크게 관심을 보였고 대부분의 투수들에게 체인지업을 꼭 가르친다고 한다.
구단 입단 후에 들어온 유망주들을 대상으로 직구 구속을 높임으로서 파이어볼러들을 양성하고, 손목이나 팔꿈치, 어깨 등에 무리가 덜 가고 직구 구속 저하와 영향이 적은 체인지업을 가르치는 것인데, 직구 - 체인지업의 두 구종만으로도 수싸움만(빠른공 - 느린공) 잘 해 주어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으며 투수의 부상을 덜 수 있다는 점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또한 1990년대부터 투수의 부상방지를 위해[2] 투구수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였고, 그로 인해 투수를 혹사하는 유형의 감독들과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고 한다.
처음에 김성한 감독 시절 (2001-2001년) KIA의 투수코치로 있다가, 투수를 혹사하는 김성한과 충돌을 빚고 SK로 가서 조범현 감독 밑에서 투수코치를 했다. 이후 조범현 SK감독이 물러나자 다시 KIA로 돌아와 서정환 감독 밑에서 투코를 했으나, 이 때(2007년) 야인으로 있던 조범현 감독을 개인적 친분으로 KIA의 배터리 코치로 시즌중 영입하는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후 서정환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물러났고, 야구인들의 예상대로 조범현 감독이 기아 감독으로 부임하자 계속 함께 갈 것 같았으나, 2009년 시즌 중 2군으로 좌천되었고, 2009년 기아 우승 직후 조범현 감독에 의해 해임된다. 모종의 의견 충돌이 있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나 확실한 건 두 사람만 아는 것이라서..
KIA 타이거즈 팬들은 KIA의 암흑기에 서정환 감독을 깔 때 같이 까는 경향이 강하지만 꼴찌를 한 시즌에도 기아의 마운드는 리그 4위 수준의 준수한 마운드였으며, 09년에 보여준 기아 팜의 수많은 파이어볼러들에게 있어 김봉근 코치의 영향이 크다는 것은 간과하는 것 같긴 하다.
야인으로 있다가 2013년 10월 7일 kt wiz의 투수코치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2015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했다.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2019년 강릉영동대 코치를 맡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