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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향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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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향원정
景福宮 香遠亭 | |
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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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궁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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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
| 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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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연도
| 2012년 3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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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
| 조선시대, 1873년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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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2] ~ 2017년의 향원정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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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역사
조선 초기에는 없었다. 1456년(세조 2년)에 경복궁 후원에 지은 취로정(翠露亭)이 향원정 자리에 있었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현재의 향원정은 경복궁 중건 이후에 처음 세웠다. 시기는 1867년(고종 4년)에서 1873년(고종 10년) 사이로 보이나 1873년 건청궁과 같이 지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후 왕과 왕실 가족들이 휴식처로 이용하였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도 살아남아 지금까지 고종 당시의 모습을 유지한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보수 공사를 진행하였다.
건물 구조의 특징에 대해서는 링크 참조.
현재의 향원정은 경복궁 중건 이후에 처음 세웠다. 시기는 1867년(고종 4년)에서 1873년(고종 10년) 사이로 보이나 1873년 건청궁과 같이 지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후 왕과 왕실 가족들이 휴식처로 이용하였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도 살아남아 지금까지 고종 당시의 모습을 유지한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보수 공사를 진행하였다.
건물 구조의 특징에 대해서는 링크 참조.
향원정 온돌 발견 내용을 다룬 2019년 11월 20일 자 YTN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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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취향교
4. 열상진원
景福宮 洌上眞源
향원정 서북쪽에 있는 샘으로, 북악산의 지하수가 이 곳에서 솟아난다. 샘 주변을 화강석으로 감싸고 뚜껑 역시 같은 화강석이다.
경복궁 창건 당시부터 있었으나 샘을 덮은 뚜껑은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만들었다. 이름은 ‘한강(洌上)의 진짜(眞) 근원(源)’이란 뜻이다. 열수는 한강의 다른 말이며 ‘열상’은 ‘열수의 위’, 즉 ‘서울’을 의미하는데 편의상 열상을 열수와 같은 뜻으로 쓴 듯 하다. 비록 강원도 태백시 검룡소가 한강의 진짜 발원지이지만, 왕궁에서 발원한 물이 한강으로 흐르기에 상징적으로 이름 붙인 것이다.#
샘은 총 3층의 계단식이다. 솟아난 물이 두 번 직각으로 꺾여 향원지로 들어가게 하였고, 특히 연못과 만나는 부분은, 동그란 홈에 물이 고이게 하여 향원지 물 높이보다 아래로 흘러들어 갈 수 있게 만들었다. 이는 한 번에 물이 내려올 때 생길 수 있는 연못의 파동을 최대한 줄여 향원지의 물을 잔잔하게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만든 데에는 물고기가 놀라지 않게 하려고 그랬다는 설과 연못에 비친 향원정과 여러 꽃, 나무의 그림자들을 흔들림없이 보려고 했다는 설이 있다.
향원정 서북쪽에 있는 샘으로, 북악산의 지하수가 이 곳에서 솟아난다. 샘 주변을 화강석으로 감싸고 뚜껑 역시 같은 화강석이다.
경복궁 창건 당시부터 있었으나 샘을 덮은 뚜껑은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만들었다. 이름은 ‘한강(洌上)의 진짜(眞) 근원(源)’이란 뜻이다. 열수는 한강의 다른 말이며 ‘열상’은 ‘열수의 위’, 즉 ‘서울’을 의미하는데 편의상 열상을 열수와 같은 뜻으로 쓴 듯 하다. 비록 강원도 태백시 검룡소가 한강의 진짜 발원지이지만, 왕궁에서 발원한 물이 한강으로 흐르기에 상징적으로 이름 붙인 것이다.#
샘은 총 3층의 계단식이다. 솟아난 물이 두 번 직각으로 꺾여 향원지로 들어가게 하였고, 특히 연못과 만나는 부분은, 동그란 홈에 물이 고이게 하여 향원지 물 높이보다 아래로 흘러들어 갈 수 있게 만들었다. 이는 한 번에 물이 내려올 때 생길 수 있는 연못의 파동을 최대한 줄여 향원지의 물을 잔잔하게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만든 데에는 물고기가 놀라지 않게 하려고 그랬다는 설과 연못에 비친 향원정과 여러 꽃, 나무의 그림자들을 흔들림없이 보려고 했다는 설이 있다.
5. 여담
- 우리나라 최초의 스케이트 공간이기도 하다. 조선을 방문했던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책 ‘조선과 이웃나라들’에 따르면, 1894년 겨울에, 서양 선교사들이 얼어붙은 향원지 연못에서 피겨 스케이팅 시연회를 고종과 명성황후 앞에서 했는데 고종은 선교사들이 미끄러질 때마다 엄청 웃으면서 즐거워했다고 한다.[4] 명성황후는 이성끼리 서로 손을 잡았다 놨다 하는 것을 못마땅해했으나 얼음판 위에 놓인 의자를 훌쩍 뛰어넘는 곡예를 부릴 때는 어린이처럼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몇 번 더 경복궁에서 스케이트를 타게 했으며 1895년 1월에는 아예 두 차례에 걸쳐 스케이트 파티를 열었는데 서울에 살던 대부분의 서양인들이 모였다.
- 굉장히 아름다운 풍경에다 서울에 있어서 그런지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출품작 중 가장 많이 나온 소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