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고등학교 야구부
(Kyunggi High School) | |
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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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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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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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기록[4]
|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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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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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 우승
| 준우승
| 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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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회(2000, 08, 18)
| 7회(1991, 2006, 09, 12, 14, 15, 17)
| |
-
| 1회(1948)
| 2회(2001, 13)
| |
1회(2000)
| 2회(1948, 49)
| 2회(2002, 18)
| |
-
| 1회(1998)
| 3회(1978, 2005,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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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2014)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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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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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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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연혁
2.1. 미미한 역사와 해체
일단 학교 측 이야기에 따르면 1905년에 황성 YMCA 야구단이 활동하던 시절에 창단이 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8]
1999년에 편찬된 한국야구사에는 "1905년에 부임한 다카하시의 지도아래 야구부를 창설했다는 사실"이라는 대목이 남아있으며 이 때문에 국내에서 가장 먼저 야구를 받아들인 학교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정확한 창단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며 1908년 가을이후부터 본격적인 기록이 남아있어 창단시기가 더 늦춰질수도 있다. 황성 YMCA 야구단은 미국인 선교사 아래에 미국의 야구를 도입했다면, 경기고등학교는 일본인 교사로 부터 일본식 야구를 도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어쨋든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경기고등학교[9]에 야구부가 있었고, 활약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해방 후 열린 청룡기와 황금사자기 양대 대회에서 세 차례 결승에 오르지만, 이때는 태양을 던지는 남자, 장태영이 이끌던 경남중학교의 무적 시대였고, 결국 세 번 모두 장태영의 벽을 넘지 못하면서 패배하였다.[10] 그리고 1960년대 말에 해체되면서 팀은 한동안 명맥이 끊어졌다. 이 와중에서 생긴 웃지 못할 도시전설이 바로 경기고 축구부와 관련된 전설.
1999년에 편찬된 한국야구사에는 "1905년에 부임한 다카하시의 지도아래 야구부를 창설했다는 사실"이라는 대목이 남아있으며 이 때문에 국내에서 가장 먼저 야구를 받아들인 학교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정확한 창단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며 1908년 가을이후부터 본격적인 기록이 남아있어 창단시기가 더 늦춰질수도 있다. 황성 YMCA 야구단은 미국인 선교사 아래에 미국의 야구를 도입했다면, 경기고등학교는 일본인 교사로 부터 일본식 야구를 도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어쨋든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경기고등학교[9]에 야구부가 있었고, 활약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해방 후 열린 청룡기와 황금사자기 양대 대회에서 세 차례 결승에 오르지만, 이때는 태양을 던지는 남자, 장태영이 이끌던 경남중학교의 무적 시대였고, 결국 세 번 모두 장태영의 벽을 넘지 못하면서 패배하였다.[10] 그리고 1960년대 말에 해체되면서 팀은 한동안 명맥이 끊어졌다. 이 와중에서 생긴 웃지 못할 도시전설이 바로 경기고 축구부와 관련된 전설.
2.2. 암흑의 시대와 첫 우승
1976년 재건한 경기고 야구부는 1978년 봉황대기 4강으로 깜짝 이름을 알렸지만, 그 뒤로 다시 1980년대를 암흑 시대로 날리고 말았다. 1980년대 말부터 지역예선을 통과하기 시작한 경기고는 점차 전력이 강해지면서 손경수나 김영수 같은 우수한 선수들의 출현으로 다크호스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런 우수한 선수들의 출현의 결실은 먼저 1998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준우승[11]으로 이어졌다. 다음해인 1999년에는 서울고에서 이동현을 데려와 대구에서 열린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경북고를 5-3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그리고 2000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 첫 메이저대회[12] 우승을 갈망한 경기고는 한서고[13]에서 오승환을 전학시켜 팀 투수진을 강화했다. 비록 오승환은 부상으로 별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이동현은 진통제 투혼 확실한 에이스 노릇을 해 주며, 대통령배 준우승[14][15]과 황금사자기 우승[16]으로 창단 후 첫 메이저대회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2.3. 명문고 반열에 오르다
감격적인 첫 우승 이후로는 4강은 꾸준하지만 우승과는 약간 모자란 팀이 되었다. 꾸준히 각 대회에서 4강에는 올랐지만, 결승까지 올라간 것은 2008년 한 차례로 오지환이 투타에서 에이스 역할을 하며 대통령배 결승에 올랐지만 성영훈의 덕수고에 0-1로 아쉽게 패하면서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 유일했다. 그러다가 2014년 대통령배 4강에 진출하더니, 대한야구협회장기 결승에서 덕수고를 6-5로 꺾고 14년만에 전국대회 우승을 달성했다.기사
3. 논란
4. 출신 선수[19]
이름
| 포지션
| 프로입단
|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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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 1991년 연고 지명 입단
| LG(1991~1993)
| |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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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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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 LG(2001~2019)
| ||
투수
| 2006년 신고선수 입단
| 홍익대-삼성(2006~2009)
| |
투수
| |||
내야수
| |||
투수
| |||
투수
| 성균관대-한화(2009~2015)
| ||
포수
| |||
내야수
| |||
외야수
| |||
투수
| 두산(2007~)
| ||
투수
| |||
내야수
| 2008년 신고선수 입단
| ||
내야수
| 2012년 신고선수 입단
| 한양대-삼성(2012~2017)
| |
내야수
| 동국대-LG(2012~2013)
| ||
투수
| 경희대-LG(2012~)
| ||
내야수
| LG(2009~)
| ||
투수
| 2013년 신고선수 입단
| 건국대-NC 다이노스(2013~2018)
| |
내야수
| 2014년 신고선수 입단
| 연세대-롯데(2014~)
| |
외야수
| |||
포수
| 2014년 신고선수 입단
| 고려대-SK 와이번스(2014~2017)
| |
내야수
| NC(2012~)
| ||
투수
| 2016년 육성선수 입단
| 동국대-넥센/키움(2016~2017, 2020~)
| |
내야수
| kt(2014~)
| ||
투수
| 넥센(2015~2018)
| ||
내야수
| KIA(2015~)
| ||
투수
| |||
내야수
| 2019년 육성선수 입단
| 성균관대-SK(2019~2020)
| |
투수
| |||
외야수
| 2020년 육성선수 입단
| 중앙대-KIA(2020~)
| |
투수
| NC(2016~)
| ||
투수
| |||
투수
| 한화(2017~2019)
| ||
투수
| 서남대-한일장신대-한화(2021~)
| ||
투수
| 두산(2018~)
| ||
내야수
| KIA(2018~)
| ||
투수
| 롯데(2018~)
| ||
투수
| 키움(2019~)
| ||
외야수
| 삼성(2019~)
| ||
투수
| KIA(2019)
| ||
포수
| 한화(2019~)
| ||
포수
| 두산(2020~)
| ||
내야수
| SK(2020~)
| ||
외야수
| SK(2021~)
| ||
투수
| 삼성(2021~)
|
5. 관련 문서
[참고] 1.1 1.2 학교 측에 따르면 황성 YMCA 야구단이 활동하던 시절인 1905년에 창설되었다 하는데, 아직 확실한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3] 4대 메이저 + 협회장기[4] 4대 메이저 + 협회장기[5] 경기고 운동부 홈페이지. 로그인 후 접속가능.[6] 경기고 운동부 홈페이지. 로그인 후 접속가능.[7] 2008년부터 재직중이다. 투수코치는 박창근(1983년생, 98회 졸업생, SK 입단), 야수코치는 이지완(1984년생, 99회 졸업생, 경성대 졸업)이다.[8] 참고로 1905년 창설이 맞다면 대한민국 고교야구팀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참고로 인천고의 전신인 인천상업고등학교 야구부도 1905년에 창단되었다고 하는데 공식적으로 인천고 야구부의 시작은 1917년이다.[9] 경기고등학교는 1900년에 창설된 관립중학교가 전신이다. 따라서 이때 야구부의 명칭도 관립중학교 야구부이다.[10] 박현식이 이 시기에 잠시 몸 담기도 했다. 곧바로 동산중(학제 분리 후 동산고)으로 돌아갔지만.[11] 결승에서 송승준이 이끄는 경남고에게 1대7로 패배함[12] 대통령배, 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대기를 일컫는다.[13] 현재는 해체됐으며, 오승환과 같은 학년으로 군산에서 상경한 채병용이 있었다.[14] 추신수,정근우, 김백만이 활약한 부산고에 3대10으로 패배. 이동현이 연투한 경기고에 비해 부산고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는데 결승전 전날에 열린 준결승전에서 부산고는 류제국이 버틴 덕수정보고에 김백만이 완투승을 거뒀다.[15] 토요일 오후에 결승전이 열렸으며 KBS 지상파로 전국에 생중계됐다. 대통령배 부산예선 부산고-경남고 게임에는 무조건 양교에서 응원단을 보내기에 학교 입학과 동시에 응원 연습부터 시키는 부산고는 응원부의 지휘하에 일사분란한 응원을 선보였고 제대로 된 응원부조차 없었던 경기고는 부산고의 단체응원을 넋놓고 구경하기만 했다. 단체 버스로 움직인 부산고와 다르게 각자 대중교통으로 오는 경기고 학생들은 구장으로 가는 중간에 새기도 했다.[16] 앞서 말한 채병용은 한서고에서 신일고로 전학하여 4번타자로 활약하였고, 신일고에 10대7로 승리. 7월 1학기 기말고사 직전에 결승전이 열렸고 하필 낮에 열리는 바람에 땡볕에서 응원을 해야했다. 시험공부 해야하는데 무슨 단체응원이냐고 투덜댄건 덤[17] 대한야구협회장기와 전국 명문고 야구열전 둘다 구덕운동장에서 열렸기 때문.[18] 대한야구협회장기와 전국 명문고 야구열전 둘다 구덕운동장에서 열렸기 때문.[19] 나무위키 등록 선수만. 졸업 연도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