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쿠라 막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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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쿠라 막부
鎌倉幕府
1185년 ~ 1333년
헤이안쿄(조정)
가마쿠라(막부)
정치체제
국가원수
정이대장군(명목상)
싯켄(사실상)[2]
주요 정이대장군
주요 싯켄
중세 일본어
료(両)
주요사건
1192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정이대장군 임명으로 수립
1203년 호조 씨 싯켄 독점
1333년 겐무 신정으로 멸망
성립 이전
멸망 이후
1. 개요2. 시대상3. 쇼군들의 역사4. 지배 구조
4.1. 역대 [[정이대장군]]4.2. 역대 [[싯켄]]
5. 관련 문서


1. 개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1192년에 창설한 일본 최초의 막부.

요리토모가 정이대장군(쇼군)에 임명된 1192년이 가마쿠라 막부의 시작이지만, 그 이전부터 요리토모의 통치 기구는 존재하고 있어서 실질적인 성립은 1185년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요리토모의 직계는 미나모토노 사네토모에서 단절되고 그 이후부터는 호조 가문싯켄이 막부의 실세로 등극했다.[3] 참고로 호조씨는 타이라의 간무 헤이시다. 때문에 무로마치 막부에도 막부를 종종 쇼군의 성씨에 따른 아시카가 막부, 도쿠가와 막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가마쿠라 막부를 미나모토 막부라고 부르는 경우는 별로 없다.#

2. 시대상

3. 쇼군들의 역사

가마쿠라 막부의 초대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초상화.
무로마치 막부 초대 쇼군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동생 아시카가 다다요시의 것이라는 설도 있다.
1199년 초대 쇼군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사후, 적장자인 요리이에가 그 뒤를 이었다(2대 가마쿠라도노 취임). 그러나 호조 씨를 중심으로 한 13인 합의제가 성립되면서 실권을 잃고 말았고, 이에 반발한 요리이에는 측근들을 동원하여 정국을 독단하였다. 선대부터 쇼군의 총애를 받던 카지와라 카게토키는 다시 이에 반발하여 요리이에의 동생인 사네토모를 옹립하려 하였으나, 정변이 실패한 후 교토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진압당했고, 요리이에는 1201년에 이르러 조정으로부터 쇼군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1203년에 요리이에가 중병으로 드러누우면서 권력에서 완전히 배제되었고, 외조부인 호조 도키마사가 모든 실권을 쥐고는 요리이에의 동생인 사네토모를 다시 옹립하였다. 이 와중에 요리이에의 장남인 이치만이 사망하였고, 요리이에 본인도 이즈 슈젠지에 유폐되었다가 호조의 손에 의하여 살해당했다.

사네토모는 겨우 12살의 나이로 옹립되었으나, 실권은 계속 호조 씨가 쥐고 있었고, 정치나 군략보다는 문예에 재능을 보였다. 그런데, 1219년 1월 27일, 가마쿠라의 츠루가오카 하치만구에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형 요리이에의 차남인 쿠교에 의해 살해당했다. 같은 날에 쿠교 또한 처형당했으므로 가와치 겐지 씨의 직계는 대가 끊기었다. 안습.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자손이 3대째로 끊겼기 때문에, 이후에는 요리토모의 부인 호조 마사코의 친정인 호조씨가 싯켄(執權, 한국어로 읽으면 집권)으로 실권을 장악했다. 6대 이후에는 천황가에서 황자(친왕)를 데려다가 명목상의 쇼군으로 앉히기도 했다. 덴노는 쇼군의 허수아비, 쇼군은 싯켄의 허수아비[4]

싯켄과 함께 점점 명목상의 힘으로 약화되던 가마쿠라 막부는 고다이고 덴노가 끌어들인 닛타 요시사다(新田義貞)-아시카가 다카우지-키타바타케 아키이에 등의 연합군에 의해 1333년 멸망하면서[5] 겐무 신정을 거쳐 남북조시대무로마치 시대가 열리게 된다.

4. 지배 구조

4.1. 역대 정이대장군

이름
재임기간
비고
1대
1192 ~ 1199
2대
1202 ~ 1203
1203년 폐위
1204년 살해됨
3대
1203 ~ 1219
1219년 암살
요리토모 직계 단절[7]
4대
1226 ~ 1244
5대
1244 ~ 1252
6대
무네타카 친왕 (宗尊親王)
1252 ~ 1266
최초의 황족 쇼군
7대
고레야스 친왕 (惟康親王)
1266 ~ 1289
8대
히사아키 친왕 (久明親王)
1289 ~ 1308
9대
모리쿠니 친왕 (守邦親王)
1308 ~ 1333

4.2. 역대 싯켄

파일:Hojo clan.png
가마쿠라 막부의 역대 싯켄
이름
재임기간
비고
1대
호조 도키마사 (北条 時政)
1199 ~ 1205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장인
2대
호조 요시토키 (北条 義時)
1205 ~ 1224
조큐의 난으로 전권 장악
3대
호조 야스토키 (北条 泰時)
1224 ~ 1242
4대
호조 쓰네토키 (北条 経時)
1242 ~ 1246
5대
호조 도키요리 (北条 時頼)
1246 ~ 1256
회국 전설[9]
6대
호조 나가토키 (北条 長時)
1256 ~ 1264
7대
호조 마사무라 (北条 政村)
1264 ~ 1268
8대
호조 도키무네 (北条 時宗)
1268 ~ 1284
9대
호조 사다토키 (北条 貞時)
1284 ~ 1301
10대
호조 모로토키 (北条 師時)
1301 ~ 1311
11대
호조 무네노부 (北条 宗宣)
1311 ~ 1312
12대
호조 히로토키 (北条 煕時)
1312 ~ 1315
13대
호조 모로토키 (北条 基時)
1315
14대
호조 다카토키 (北条 高時)
1316 ~ 1326
1326년 출가, 실질적으로 최후 싯켄[11]
15대
호조 사다아키 (北条 貞顕)
1326
16대
호조 모리토키 (北条 守時)
1327 ~ 1333

5. 관련 문서

[1] 1203년 호조 도키마사 집권부터. 13세기 중반부터는 호조 가문의 당주인 도쿠소(得宗)가 싯켄보다 권력을 더 갖는다. 대부분 싯켄 본인이거나 퇴임한 싯켄이다. 하지만 이 제도도 가면서 퇴색해갔고, 1333년 호조씨가 망했을 때 도쿠소이자 전 싯켄으로 실권자였던 호조 다카토키는 만 30세에 불과하였으며 모든 실권은 다카토키 지배 시작부터 그의 보좌관 나가사키 엔키에게 있었다. 그는 호조씨와 함께 죽는다.[2] 1203년 호조 도키마사 집권부터. 13세기 중반부터는 호조 가문의 당주인 도쿠소(得宗)가 싯켄보다 권력을 더 갖는다. 대부분 싯켄 본인이거나 퇴임한 싯켄이다. 하지만 이 제도도 가면서 퇴색해갔고, 1333년 호조씨가 망했을 때 도쿠소이자 전 싯켄으로 실권자였던 호조 다카토키는 만 30세에 불과하였으며 모든 실권은 다카토키 지배 시작부터 그의 보좌관 나가사키 엔키에게 있었다. 그는 호조씨와 함께 죽는다.[3]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사후 요리토모의 장인 호조 토키마사가 임명된 것이 시초로 이후 호조 가문에서 대대로 계승했다.[4] 이건 나중에 가도 별로 달라질 게 없이 초반에만 쇼군이 나섰을 뿐, 이후로는 막부의 재상 격인 가로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다만 이후의 막부는 쇼군 자리만은 확실히 개창한 가문이 이었다. 즉 무로마치 막부는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아시카가 가문과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직계가 에도 막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도쿠가와 가문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직계가 그 막부 멸망하는 순간까지 이었다는 것이다. 또 두 막부에는 싯켄 같은 수준의 실권자도 없었고 호조 가문처럼 실권자가 대대로 독접하지만도 않았다.[5] 2년 뒤 호조씨의 잔당이 가마쿠라를 재점령하며 재기를 꿈꿨으나 이마저 다카우지에게 격파당한다. 이후 전국시대에 호조씨가 등장하긴 하지만 그건 후호조씨라고 호조씨와는 별 관련없다. 이들의 혈연적인 공통조상은 무려 헤이안 시대에 가야 나올 정도다.[6] 쇼군직에서 몰려난 형 미나모토노 요리이에의 차남이자 조카인 구교가 달려들었고, 그대로 피살된다.[7] 쇼군직에서 몰려난 형 미나모토노 요리이에의 차남이자 조카인 구교가 달려들었고, 그대로 피살된다.[8] 廻国伝説. 도키요리는 후대의 미토 고몬 비슷하게 백성의 생활을 살피기 위해 나라를 돌며 암행했다는 전설이 있다.[9] 廻国伝説. 도키요리는 후대의 미토 고몬 비슷하게 백성의 생활을 살피기 위해 나라를 돌며 암행했다는 전설이 있다.[10] 뒤의 두 사람은 다카토키의 인기가 떨어지자 앉힌 바지사장들이고, 실제로 가마쿠라 막부는 다카토키가 1333년 포위된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살하면서 끝난다.[11] 뒤의 두 사람은 다카토키의 인기가 떨어지자 앉힌 바지사장들이고, 실제로 가마쿠라 막부는 다카토키가 1333년 포위된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살하면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