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久留米市 (ひがしくるめし) 히가시쿠루메시 / Higashikurume City | |
국가 | |
지방 | |
마스코트 | 샘물의 요정 루루메짱 |
도도부현 | |
면적 | 12.88km² |
인구 | 116,459명[1] |
인구 밀도 | 9,037명/km² |
시목 | |
시화 | |
시조 | |
시장 | 나미키 카츠미(並木 克巳) |
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히가시쿠루메시에는 3만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
중세 시대에는 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땅 때문에 작은 마을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일본이 통일 된 후, 에도 시대가 되자 막부의 정책에 따라 복잡한 지배 체제가 취해지고 있었다.
그 후 1868년, 메이지 정부가 탄생하면서 히가시쿠루메시는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1869년, 시나가와현에 편입되었고 5년 후 가나가와현에 편입된 후 몇 차례의 변화가 더 있고 나서
카미야마,오치아이,코야마,미나미,마에자와,시모사토 등과 통합해 히가시쿠루메시가 탄생했다.
히가시쿠루메시는 농촌 지였이였지만, 히가시쿠루메역이 개통 된 후 생산물, 물자의 유통이 진행되어 사람도 다니기 시작했다.
1945년 이후 인구가 폭증하여 1955년에는 1만명, 1960년에는 2만명, 이후 7만 8천명까지 늘었다.
그 후 1970년에 도쿄도의 22번째 도시가 되었다.
중세 시대에는 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땅 때문에 작은 마을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일본이 통일 된 후, 에도 시대가 되자 막부의 정책에 따라 복잡한 지배 체제가 취해지고 있었다.
그 후 1868년, 메이지 정부가 탄생하면서 히가시쿠루메시는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1869년, 시나가와현에 편입되었고 5년 후 가나가와현에 편입된 후 몇 차례의 변화가 더 있고 나서
카미야마,오치아이,코야마,미나미,마에자와,시모사토 등과 통합해 히가시쿠루메시가 탄생했다.
히가시쿠루메시는 농촌 지였이였지만, 히가시쿠루메역이 개통 된 후 생산물, 물자의 유통이 진행되어 사람도 다니기 시작했다.
1945년 이후 인구가 폭증하여 1955년에는 1만명, 1960년에는 2만명, 이후 7만 8천명까지 늘었다.
그 후 1970년에 도쿄도의 22번째 도시가 되었다.
3. 교통[편집]
3.1. 철도[편집]
3.2. 버스[편집]
3.3. 도로[편집]
4. 시민 헌장[편집]
- 우리들은 자연을 살려 깨끗하고 조화로운 거리를 만들것입니다.
- 서로를 존중하고 마음을 나눠 모두가 행복하게 살수 있는 도시를 만들것입니다.
- 어린이들이 생생하게 자라고 노인도 행복하게 사는 보람이 있는 거리를 만들것입니다.
- 자유를 사랑하고 용기를 가지고 질서있는 거리를 만들 것입니다.
- 지혜를 모아 서로 기꺼이 마을 만들기에 참여하고 살기 좋은 히가시쿠루메시를 만듭니다.
5. 교육[편집]
소학교
중학교
- 久留米中学校
- 西中学校
- 東中学校
- 南中学校
- 大門中学校
- 下里中学校
- 中央中学校
고등학교
- 久留米西高等学校
- 東久留米総合高等学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