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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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왕(廢王)
(姬)
퇴(頹)
생몰 기간
기원전 696년 ~ 기원전 673년
재위 기간
기원전 675년 ~ 기원전 673년

1. 소개2. 희퇴 왕이 되다.3. 최후4. 여담

1. 소개[편집]

주나라의 비정통 국왕. 장왕(莊王)의 아들로 그는 장왕이 그 어머니인 요희(姚姬)를 총애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 소생인 그도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희퇴는 형인 희왕 때까지는 아무 일이 없었다.

2. 희퇴 왕이 되다.[편집]

희왕이 죽고 희왕의 아들인 혜왕이 즉위하며, 야수를 기르며 민폐를 끼치자 오대부는 혜왕을 몰아내고 그를 왕으로 모셨다. 이때는 혜왕 2년(기원전 675년)이었다. 그리고 위나라와 연나라를 끌어들였다.

혜왕 3년(기원전 674년), 정 여공이 혜왕과 그의 사이를 중재했으나 희퇴가 오대부의 말을 듣고 그것을 씹었다.

3. 최후[편집]

혜왕 4년(기원전 673년), 봄 정 여공은 괵공과 함께 미(弭) 땅에 머물러 희퇴를 몰아낼 계책을 짰고, 같은 해 여름 정나라괵나라가 희퇴가 있는 낙읍을 들이쳤다. 그리고 왕성이 함락되고, 그를 추대한 오대부와 왕자 퇴는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혜왕은 다시 왕이 되었다. 그리고 역사에서는 이것을 왕자 퇴의 난이라 칭한다.

4. 여담[편집]

진(秦)나라의 명재상인 백리해(百里奚)가 가난을 못 이기고 그를 섬기려 했는데, 희퇴가 목축을 즐겼기 때문에 그를 섬기면 대우 받을거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건숙(蹇叔)이 말렸는데, 희퇴가 오래가지 못할 것을 간파했고, 과연 건숙의 말대로 희퇴는 정나라와 괵나라의 군대에게 죽임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