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2. 황후 책봉과 황태비 생활[편집]
3. 철종 사후[편집]
1099년에 철종과 소회황후 유씨 사이에서 낳은 유일한 아들인 헌민태자가 죽고, 이듬해에 철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면서, 후계자 논의는 자연스레 철종이 사망한 1100년 기준으로 생존한 신종의 아들들[2] 중에서 선정해야 했다. 당시 재상이었던 장돈은 심한 눈병을 앓고 있던 신왕 조필을 건너뛰고, 철종과 같은 주덕비의 소생인 간왕 조사를 후사로 삼을 것을 주장했으나, 철종의 생모인 덕비 주씨와 사이가 안 좋았던 흠성헌숙황후 상씨는 단왕 조길을 철종의 후사로 세울 것을 주장했다.[3] 장돈은 단왕 조길을 즉위시키자는 태후의 주장에 "그분은 행동거지가 경박하여 황제가 되는 건 불가합니다"라고 반대했지만, 흠성헌숙황후의 의견이 관철되고 이 과정에서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결국 단왕 조길이 황제로 즉위하게 되니, 이가 바로 제8대 황제인 휘종이었다.
주 태비는 휘종이 즉위하고 2년 후인 숭녕 2년(1102년)에 사망하여, 황후로 추존되고 시호를 흠성(欽成)이라고 하였으며, 신종의 무덤인 영유릉에 합장되었다.
주 태비는 휘종이 즉위하고 2년 후인 숭녕 2년(1102년)에 사망하여, 황후로 추존되고 시호를 흠성(欽成)이라고 하였으며, 신종의 무덤인 영유릉에 합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