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숙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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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예종의 왕녀
현숙공주 | 顯肅公主
출생
장소 불명
사망
1502년(연산군 8년) 5월 18일
(향년 39세)
장소 불명
부왕
모후
부군
풍천위 임광재[1]

1. 개요2. 독살 자작극
2.1. 사건의 진실은?2.2. 사건 이후

1. 개요[편집]

조선 예종안순왕후의 적장녀. 이복오빠인성대군이고, 동복동생제안대군이다. 그리고 월산대군성종은 사촌이 된다.

아버지 예종은 현숙공주의 나이 6세에 승하하였고, 임사홍의 아들 임광재와 혼인하였지만 슬하에 자녀는 없다.

2. 독살 자작극[편집]

남편은 풍천위(豊川尉) 임광재(任光載)로, 임사홍의 차남이다.

성종예종의 적통 장자인 제안대군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두 남매에게 잘 대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게 지나쳤는지 자작극을 만들 정도였다. 어느날 현숙공주의 여종이 공주의 모후인 안순왕후에게 현숙공주의 유모와 그 아들, 그리고 보모가 공주를 독살하려 했다고 보고했다. 당연히 궁은 발칵 뒤집혀서 안순왕후성종은 용의자들을 국문했지만 그들은 혐의를 부인했다. 그래서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고, 성종부마가 현숙공주가 독살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생각하고, 부마가 양갓집 규수를 으로 둔 적이 있었는데, 그에 대해 잘 이야기하면 풀어주겠다고 회유했다.

이후 부마가 양첩을 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부마가 귀양을 가고 현숙공주의 유모 등이 부마에게 회유되어 저지른 사건이라고 일단락내렸다.

2.1. 사건의 진실은?[편집]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는 남편의 외도를 질투한 현숙공주의 자작극이라고 기록되어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현숙공주는 투기하고 사나워 임광재를 공경하지 않고 원망하였다. 그래서 보모와 유모가 직언한 걸 되려 원망하여 이와 같은 자작극을 벌였다. 그리하여 억울하게 죽은 자가 7명 ~ 8명이나 되니, 그 참혹감을 차마 말할 수가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게다가 조정 대신들은 남편을 공경하지 않고 마중 나가지 않은 현숙공주를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

2.2. 사건 이후[편집]

결국 공주는 평생 슬하에 자녀없이 연산군 8년에 사망했다. 임광재보다 8년정도 오래 살았다

[1] 본관은 풍천(豊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