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
2. 이름
3. 역사
3.1. 헤로데 대왕(헤로데 1세) 치세
유대인들에 흡수된 에돔의 유력가문 출신인 안티파테르(안티파텔)와 나바테아 왕국의 페트라(요르단강 동쪽)의 공주 키프로스의 둘째 아들, 이 사람이 그 유명한 유아대학살[1][2]을 했다고 알려진 헤로데왕이다. 이스라엘(야곱)의 후손이 아니면서 이스라엘 왕족이 된 사람이다.
현재 이스라엘에선 나름대로 대왕으로 칭송하는 편이다. 그가 유대인도 아니고 다윗의 후손도 아닌데도 말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면 대표적인 이유는 하나는 성서와 본문에서 나오듯, 성전을 재건축했기 때문이다.
3.2. 헤로데 사두정치
기원전 4년 헤로데 대왕은 적자를 남기지 못한 채 사망하고, 그의 영토는 아들(서자) 셋과 여동생에게 분할된다. 하지만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허락을 받은 게 아니었다. 이를 탐탁치 않게 여긴 아우구스투스가 이들의 왕의 지위를 인정하나 통치권을 박탈한다.
헤로데 사두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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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데 아르켈라오스
| 헤로데 아르켈라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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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데 필립보 2세
| 헤로데 필립보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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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메 1세
| 데카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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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켈라오스는 유대와 사마리아, 이두메아를 아우르는 가장 넓은 땅을 물려받았으나 강압통치 때문에 기원후 6년에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폐위되어 갈리아에서 죽었다. 그의 영토는 사마리아와 이두메아를 포함하여 그대로 로마 제국의 유다이아 속주가 된다.
다섯째 부인(측실)인 클레오파트라의 아들로 헤로데의 사망 때 갓난아기였던 필립보는 자식이 없이 38세에 죽어 대가 끊기게 된다.
갈릴래아와 페레아는 헤로데 안티파스가 통치하고 있다가 39년 그가 칼리굴라 황제에게 폐위당한 뒤 40년 그의 조카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의 손에 들어간다. 41년 아그리파스 1세가 유대 왕위에 오르면서 유다이아 속주는 그의 치하에 자치권을 누렸는데, 44년 그의 사망 이후 유다이아 속주가 다시 로마 제국의 직할령이 되면서 그가 가지고 있던 갈릴래아와 페레아가 유다이아 속주에 편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