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허량은 1895년 3월 3일 충청북도 영동군 여천면 마곡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7일 육창주(陸昌柱)·허상기·김용이(金龍伊) 등이 이원 장날을 이용하여 일으킨 만세시위에 참가했다. 그는 군중의 앞에 서서 헌병대로 달려가 창문과 담장을 부수며 격렬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출동한 일본 헌병에게 잡히어 유치장에 갇혔으나, 김용이와 함께 유치장을 탈출하여 시위군중과 합세하여 다시 주재소에 돌을 던지고, 말뚝을 뽑아 헌병을 구타하는 등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했다.
그러나 결국 일제 경찰에게 다시 체포된 그는 1919년 6월 28일 경성복심버부언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영동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35년 7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허량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6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그러나 결국 일제 경찰에게 다시 체포된 그는 1919년 6월 28일 경성복심버부언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영동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35년 7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허량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6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