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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1916년 네덜란드 출신 백인 아프리카너의 후손으로 출생했다. 1948년 국회의원이 된 이후 무려 40여년 간 실세를 잡고 있던 인물이다.
당시 시대가 그랬듯이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몰락하기 시작한 1970년대에 총리가 된 보타는 아파르트헤이트를 고수하였고, 1979년 핵무기 6기를 제조하여 남아공의 핵무장을 강화하였다. 1980년대에 냉전의 종식이 가까워져가자 보타는 국민투표를 통해[4] 총리제를 폐지하고 실권 있는 대통령이 되었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흑인들의 반발이 본격적으로 표출된 시기에 집권한 보타는 집권초기에 인종간 결혼금지 폐지정책과 컬러드와 아시아계 의회 개설 등의 조치를 취해서 아파르트헤이트를 폐지하려고 했던 정치인으로 보였고 덕택에 백인 자유주의자의 표를 일정 부분 얻기도 했지만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핵심부분을 폐지하지 않고 또한 이전 총리들과 마찬가지로 흑인들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는건 매한가지였으며, 투표권을 요구하는 흑인들에게 잔혹하게 대하며 대대적인 탄압을 가했다.
1986년 6월 12일, 보타 대통령은 국영방송 SABC 텔레비전에서 연설을 통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당시 흑인들의 집회에 무력으로 대응했다. 결국 남아공의 혼란 양상은 더욱 심화되었고 경제도 나락으로 떨어져나갔다.
1986년 6월 12일, 보타 대통령이 의회에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연설 방송.[5]
이 와중에 감옥에 수감중이던 '46664[6]' 넬슨 만델라에게 작은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시대가 그랬듯이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몰락하기 시작한 1970년대에 총리가 된 보타는 아파르트헤이트를 고수하였고, 1979년 핵무기 6기를 제조하여 남아공의 핵무장을 강화하였다. 1980년대에 냉전의 종식이 가까워져가자 보타는 국민투표를 통해[4] 총리제를 폐지하고 실권 있는 대통령이 되었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흑인들의 반발이 본격적으로 표출된 시기에 집권한 보타는 집권초기에 인종간 결혼금지 폐지정책과 컬러드와 아시아계 의회 개설 등의 조치를 취해서 아파르트헤이트를 폐지하려고 했던 정치인으로 보였고 덕택에 백인 자유주의자의 표를 일정 부분 얻기도 했지만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핵심부분을 폐지하지 않고 또한 이전 총리들과 마찬가지로 흑인들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는건 매한가지였으며, 투표권을 요구하는 흑인들에게 잔혹하게 대하며 대대적인 탄압을 가했다.
1986년 6월 12일, 보타 대통령은 국영방송 SABC 텔레비전에서 연설을 통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당시 흑인들의 집회에 무력으로 대응했다. 결국 남아공의 혼란 양상은 더욱 심화되었고 경제도 나락으로 떨어져나갔다.
1986년 6월 12일, 보타 대통령이 의회에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연설 방송.[5]
이 와중에 감옥에 수감중이던 '46664[6]' 넬슨 만델라에게 작은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만약 만델라가 더 이상 폭동과 무력행위를 하지 않겠다면, 만델라의 석방을 고려해 볼 것이다.
이 제안에 대한 대답은 간결했다.
싫소(No).
그러다가 1988년 들어 건강이 나빠진 보타는 흑인과 백인을 가리지 않고 '늙은 악어'라는 비난을 받았고, 결국 1989년 8월 15일 사임한다. 후임은 개방적인 성격의 프레데리크 빌럼 데 클레르크. 데 클레르크는 만델라를 석방시켜 아프리카민족회의를 합법화시켜 1991년 아파르트헤이트 폐지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7]
1994년 넬슨 만델라가 취임한 이후, 보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웨스턴케이프 주의 와일더네스라는 도시에 거주하며 살았다. 1998년 남아공 정부가 보타에게 '청문회에 출석하라.' 는 통보를 했지만 그는 거절을 하고 아파르트헤이트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2006년 10월 31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항년 90세.
[1] 1984년에 폐지되었다. [2] 1984년 이전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총리에게 실권이 있었고, 대통령은 실권이 없는 의원내각제 국가였다.[3] 그의 집권기에 남아공은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을 연상하게 하는 인권 탄압국이었다. 언론과 대중 문화는 모조리 검열대상에 들어갔고 사회적으로 아주 극우적인 정책을 견지했기에 극우 성향이 아니라면 백인들도 피터르 빌럼 보타는 좋아하지 않는 편.[4] 대통령제 도입과 비백인 의회 개설 등의 내용이 담긴 새 헌법의 도입 찬반 투표였다.[5] 국영방송 SABC의 방송자료실에 보관되어 있다.[6] 넬슨 만델라의 수감 번호. 64년에 수감된 466번째 죄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7] 이 때문에 데 클레르크는 일부 극우 백인들 사이에서 매국노란 비난을 받기까지 했다. 물론 흑인, 컬러드, 극우가 아닌 백인들에겐 넬슨 만델라와 더불어 양대 국부로 추앙받지만...[8] 사실 표면적으로나마 아파르트헤이트를 완화하긴 했다. 그러나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이 국내외로 절정에 달한 시기도 보타 정권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