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올라사르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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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프란시스코 올라사르 (Francisco Olazar) |
생년월일 | |
사망년월일 | |
국적 | |
출신지 | 킬메스 |
포지션 | 센터 하프 |
신체조건 | 168cm / 79kg |
등번호 | -[1] |
소속팀 | 라싱 클럽 (1910-1922) |
국가대표 | 18경기 / 1골 (1916-1921) |
감독 | 아르헨티나 (1928-1930) |
첫 대회 ◀ | ☆(1930) | ▶ 페트루(1934) | |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2.1. 선수 생활[편집]
프란시스코 올라사르는 라싱 클럽에서 1910년에 데뷔하였다. 그리고 알베르토 오아코, 후안 페리네티 등과 라싱 클럽의 초기 전성기를 이끌었던 훌륭한 선수였다. 그 동안 아르헨티나 리그와 닥터 이바구렌 컵 등 대내외적인 컵 대회에 출전하였고 우승도 많이 했다. 클럽에서는 13년간의 라싱 클럽 생활을 통틀어 225경기에 출전, 38골을 넣었다. 올라사르의 포지션이 수비수임을 감안하면 저건 사기급 골 기록이다
그러면서 국가대표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줬는데, 초기 코파 아메리카에서 주전 센터 하프로 출전하였다. 국가대표팀에서는 총 18경기의 출전 기록을 남겼다.
그러면서 국가대표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줬는데, 초기 코파 아메리카에서 주전 센터 하프로 출전하였다. 국가대표팀에서는 총 18경기의 출전 기록을 남겼다.
2.2. 감독 생활[편집]
올라사르는 1928년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감독에 취임하였다. 그러면서 1929년에는 후안 호세 트라무톨라와 공동 감독[2]을 맡으며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를 준비했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덜컥 우승해버렸다.
이 성공을 발판으로 초대 월드컵에 출전한 아르헨티나. 5경기에서 총 18골을 넣어 화끈한 공격 축구를 보여주었지만 라이벌 우루과이에 패해 우승에는 실패하였다. 그리고 이 대회를 끝으로 둘 다 감독직을 내려놓았다.
이 성공을 발판으로 초대 월드컵에 출전한 아르헨티나. 5경기에서 총 18골을 넣어 화끈한 공격 축구를 보여주었지만 라이벌 우루과이에 패해 우승에는 실패하였다. 그리고 이 대회를 끝으로 둘 다 감독직을 내려놓았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선수 시절에는 테크닉과 패스 센스가 뛰어난 하프백이었다. 그래서 코너킥을 자주 처리했으며 헤딩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4. 뒷이야기[편집]
- 한편으로는 초대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감독이 한 일은 별 게 없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애초에 멤버들은 정해져 있고 감독들은 그 멤버를 이끄는 역할만 했다는 것.
5. 수상[3][편집]
5.1. 클럽[편집]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8회: 1913, 1914, 1915, 1916, 1917, 1918, 1919, 1921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준우승 1회: 1920
5.2. 국가대표[편집]
6. 감독[편집]
-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 1회: 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