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아파트 붕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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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전개

1. 개요[편집]

2014년 5월 13일, 북한 평양직할시 평천구역 안산1동에 위치한 23층 아파트가 무너진 사건이다. 와우 시민아파트 붕괴사고의 북한판이라고 할 수 있다. 40년이 넘는 시간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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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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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아파트가 무너지기 한참 전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포토샵으로 조작한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무너지기 직전에 찍은 것이 아니라 아직 건설 중이었음에도 저렇게 휘어진 상태였던 것이다.[1] 그 와우아파트도 저렇게 대놓고 휘게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설계자가 아오지 탄광으로 갔다는 소문도 있으나, 실제로는 탄광으로 가지 않고 총 맞아 죽었다.

보도된 것은 5월 18일인데, 조선중앙방송의 보도에 의하면 간부들이 감독 통제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고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중앙방송은 정확한 사상자의 숫자는 공개하지 않았다. 후속조사에 따르면 당시 92세대가 입주해 있었는데, 북한에서는 시공사가 인테리어까지는 해주지 않기 때문에 입주가정의 의뢰로 인테리어중이던 인부들과 휴가를 내고 인테리어 공사중이던 사람 등이 사망해서 대략 300여명이 사망했다고 한다.[출처]

하지만 이 사건은 이례적으로 사고 후 닷새 만에 보도했고 당 간부가 직접 주민들에게 사죄하는 모습까지 방영했다.# 얼마 전 발생한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를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없지는 않지만, 무엇보다 이곳은 다른 곳도 아니고 백두혈통을 오래전부터 지지해 온 핵심계층이 모여 사는 평양이기 때문이다.[3] 심지어 그 중에서 좀 사는 지역에서 발생한 사고고 알음알음 다 퍼진 상태라 억지로 입막음 해봤자 반발만 거세질테니 차라리 빠른 사죄로 평양 민심을 다독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건설 책임자는 아직 미분양된 집에 분양사무실을 차려놓고 있다가 변을 당했다고 한다.[출처] 도쿄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아파트 붕괴 사고의 책임으로 공사를 총지휘한 인민군 7총국장은 직책에서 해임되고 정치범수용소로 직행했으며, 설계와 시공 담당 기술자 4명은 총살되었다고 한다. 또한 사망자가 500명 이상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한다.#

사고의 원인은 부실한 원자재와 속도전으로 대표 되는 날림공사[5]가 지목되고 있다. 예시 고층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180마르카[6] 이상의 시멘트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 아파트는 120마르카 미만의 저마르카 시멘트를 사용했다고 한다. 게다가 시공업자가 돈을 빨리 회수하기 위해서 1년만에 날림으로 지은데가가, 인부로 쓰려고 뇌물을 주고 동원된 건설부대와 돌격대원들이 그 자재를 빼돌리는 등 온갖 문제가 다 겹쳤다고 한다. 얼마나 자재를 많이 빼돌렸는지 아파트가 붕괴했는데 골조는 안보이고 흙더미밖에 없었다고 한다. 생존자 0명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출처]

간부들 말에 따르면 김정은은 사고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너무 아파서 밤새 잠을 못 이뤘다...고 하는데 막상 김정은은 다음날 당 간부와 군인들의 축구 경기를 보는 장면이 나와서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 조상 김일성이나 김정일은 국가적인 큰 재해나 사고가 있으면 최소 며칠 동안은 공식 활동을 자제하면서 성명서 읽고 애도하는 척이라도 했는데 이 인간은 그런 것도 없다. 원래 북한에서 김정은의 이런 모습을 언론에 공개하면 그 자체만으로 숙청감이었지만, 당시 북한은 이미 전국에 인트라넷이 쫙 깔려져 있어서 예전처럼 대형사고를 숨기고 싶어도 제대로 숨기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물론 바로 한 달 전에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세월호 사건도 북한 언론의 보도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 뒤에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서 댐이나 교량공사에 사용되는 300마르카 이상의 특수시멘트를 표준보다 많이 사용하여 기존 아파트와 똑같은 모습으로 복원 시켜서 유족들에게 선물이라고 줬다고 한다. 입주가 완료된 상황이 아닌데다가 평일 낮에 벌어져서 일가족이 몰살당한 집은 거의 없고, 대부분의 가정이 한두명이라도 살아남았기 때문에 사건의 유족들이 거의 집을 받았으나, 대부분이 집을 팔고 떠났다고 한다. PTSD 대폭발 단지. 북한에서 최고존엄이 준 선물을 팔아버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사정이 사정인지라 당에서도 묵인해 줬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이 300명이나 죽었는데 의외로 인기가 좋다는데, 김정은 직접지시로 지었으니 어지간히 튼튼하게 했을것이라는 생각과 이미 액땜이 끝난 집이라는 생각에서 그런 것이라고.[출처]

일부에서는 사고 아파트가 최고위 간부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일반 노동자들이 살던 곳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당 간부들은 최신 건축 아파트는 날림 공사라는 걸 사전에 아주 잘 알아서 예전에 경제 사정이 좋을 때 지었던 20년 이상 된 아파트를 선호한다는 얘기도 있으나,# 반대로 평양의 거주지역은 대부분 20년 이내의 신축건물이거나 50년 이상 된 6.25 직후에 지어진 노후 건물이기 때문에 고급 아파트는 대부분 2000년대 이후에 건축붐으로 만들어진 신축건물이라는 얘기도 있다. 고급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돈만 있어서는 안 되고, 자금출처 조사를 회피할 수 있을 정도의 권력이나 뒷배가 없으면 힘들다고 한다.[출처]

[1] 후술하듯 붕괴 당시에는 92세대가 이미 입주해 있었다.[출처] 2.1 2.2 2.3 2.4 2.5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 주성하 작[3] 조부 김일성은 이 일대를 정치적 발판 삼아 세력을 키워왔고, 세습 후에도 지지해 주었기에 다른 지역과 달리 평양과 평안도의 민심만큼은 예민하게 신경 쓴다. 특히, 평천구역은 평양에서는 서울의 강남과 같은 부촌이자 상류층들의 거주 구역이기도 하다.[5] 북한은 안에 철근을 세우지 않고 그냥 벽을 블록벽 형식으로 건물을 짓기 때문에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다. 오직 단층 건물로밖에 못써먹는 블록벽 형식 건축공법으로 10층이 넘어가는 빌딩형 건물을 지으니 당연한 일이다.[6] 북한에서 사용되는 세기 단위. '스탬프, 표, 기호, 부호, 등급, 계급, 성질, 품질' 등을 의미하는 러시아어 마르카(марка)에서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