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이름 | 페르낭 알프레드 자카르 (Fernand Alfred Jaccard) |
생년월일 | |
사망년월일 | |
국적 | |
출신지 | 라쇼드퐁 |
포지션 | 센터 하프백 |
신체조건 | 176cm |
소속팀 | |
국가대표 | 12경기 / 0골 (1934-1936) |
감독 |
1. 생애[1][편집]
1.1. 선수 생활[편집]
1.1.1. 클럽[편집]
고향 라쇼드퐁(La Chaux-de-Fonds)을 연고로 하는 에투알스포르팅(Étoile-Sporting)에서 축구를 시작한 자카르는 1924년부터 2시즌간 1군 무대를 누볐다.
1926년부터 하위 리그 소속인 CS 라투르 데펠리즈(CS La Tour de Peilz)로 팀을 옮긴 자카르는 8시즌을 그 곳에서 보냈고 이 시기에 나티에도 선발되었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나고 소속팀에 돌아왔을 때 그도 모르게 그의 자리가 사라졌고 FC 몽루스포르트(Montreux-Sports)에서 1시즌을 보내야 했다.
몽루스포르트를 떠난 자카르는 FC 바젤에 새둥지를 틀었고 1935년 12월 22일, 바젤 소속으로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다 1936-37 시즌에 팀의 감독이던 하인츠 쾨르너(Heinz Körner)가 갑자기 팀을 떠나게 되자 자카르는 바젤의 선수 겸 감독이 되었고 그가 첫 바젤의 자국 출신 감독이 되었다. 자카르는 팀을 추스려 4연승을 거둬 한숨 돌리는 듯했지만 바젤은 마지막 2게임을 내리 지며 결국 13개 팀 중 공동 11위로 라쇼드퐁과 강등 플레이오프를 펼쳐야 했다. 여기에서 바젤은 재경기까지 치른 끝에 라쇼드퐁을 밀어내고 나티오날 리그에서 살아남았다.
다음 해의 바젤은 나티오날 리그에서 4위를 기록했지만 그 다음 시즌에 결국 꼴찌로 강등을 당했고 자카르는 강등의 책임을 진 채 바젤의 감독직에서 사퇴했다.
이후 자카르는 FC 로카르노(Locarno)를 거쳐 세르베트 FC에서 1945년까지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했다.
1926년부터 하위 리그 소속인 CS 라투르 데펠리즈(CS La Tour de Peilz)로 팀을 옮긴 자카르는 8시즌을 그 곳에서 보냈고 이 시기에 나티에도 선발되었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나고 소속팀에 돌아왔을 때 그도 모르게 그의 자리가 사라졌고 FC 몽루스포르트(Montreux-Sports)에서 1시즌을 보내야 했다.
몽루스포르트를 떠난 자카르는 FC 바젤에 새둥지를 틀었고 1935년 12월 22일, 바젤 소속으로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다 1936-37 시즌에 팀의 감독이던 하인츠 쾨르너(Heinz Körner)가 갑자기 팀을 떠나게 되자 자카르는 바젤의 선수 겸 감독이 되었고 그가 첫 바젤의 자국 출신 감독이 되었다. 자카르는 팀을 추스려 4연승을 거둬 한숨 돌리는 듯했지만 바젤은 마지막 2게임을 내리 지며 결국 13개 팀 중 공동 11위로 라쇼드퐁과 강등 플레이오프를 펼쳐야 했다. 여기에서 바젤은 재경기까지 치른 끝에 라쇼드퐁을 밀어내고 나티오날 리그에서 살아남았다.
다음 해의 바젤은 나티오날 리그에서 4위를 기록했지만 그 다음 시즌에 결국 꼴찌로 강등을 당했고 자카르는 강등의 책임을 진 채 바젤의 감독직에서 사퇴했다.
이후 자카르는 FC 로카르노(Locarno)를 거쳐 세르베트 FC에서 1945년까지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했다.
1.1.2. 국가대표[편집]
1.2. 감독[편집]
1.3. 이후[편집]
자카르는 라투르 데펠리즈에서 선수 생활을 할 무렵, 신발 가게 점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 세르베트 FC의 감독 시절에는 그의 신발 가게를 차렸고 축구계 은퇴 후에도 신발 가게를 경영하며 여생을 보냈다.
자카르는 100살이 되던 2008년에 천수를 다했다.
자카르는 100살이 되던 2008년에 천수를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