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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파테르노스테르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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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페르난도 파테르노스테르 (Fernando Paternoster) |
생년월일 | |
사망년월일 | |
국적 | |
출신지 | 페와호 |
포지션 | 레프트 풀백 |
신체조건 | 179cm / 70kg |
등번호 | -[1] |
소속팀 | |
국가대표 | 16경기 / 0골(1928-1930) |
감독 |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2.1. 선수 생활[편집]
2.1.1. 클럽[편집]
2.1.2. 국가대표[편집]
파테르노스테르는 1928년 올림픽에서 데뷔하였다. 결승전까지 모든 경기에 출전하면서 조국의 은메달 획득에 큰 기여를 하였다. 여기에서 큰 활약을 한 파테르노스테르는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와 초대 월드컵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였다. 그리고 월드컵에서는 라싱 클루브의 동료였던 호세 데야 토레와 주전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다.
2.2. 은퇴 이후[편집]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선수로서는 다소 전성기가 짧았다. 하지만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축구계에서는 대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4. 뒷이야기[편집]
- 아들인 펠릭스도 1960년대 아틀란타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하였다. 하지만 아버지만큼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5. 수상[편집]
5.1. 국가대표[편집]
5.2. 감독[편집]
- 카테고리아 콜롬비아 A 우승 1회: 1954
- 카테고리아 콜롬비아 A 준우승 1회: 1955
- 에콰도리안 세리에 A 우승 1회: 1965
- 에콰도리안 세리에 A 준우승 1회: 1962, 1966
[1]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2] 귀족 집안 출신인 배경이 있다.[3] 이 클럽은 CD 미요나리오스의 전신이다. 1940년대에 아돌포 페데르네라,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등 아르헨티나의 스타 선수들을 쓸어 모은 그 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