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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트라우마의 실제 사례.
2. 상세[편집]
- 04-05 시즌 당시 AC 밀란에서 뛰던 선수 상당수는 이 사건 직후 밀란을 떠나거나 은퇴할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특히 이 사건에 대한 질문을 받은 에르난 크레스포는 대놓고 '개소리'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심기가 불편함을 드러냈었고, 안드레아 피를로는 이 경기의 DVD를 버린 것도 모자라 현재까지도 F로 시작하는 단어를 내뱉는다고 한다.
- FC 바르셀로나는 17-18 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AS 로마를 상대로 4대1로 크게 이겼지만, 정작 2차전에서는 오히려 무기력한 경기 끝에 0대3으로 지며 원정 다득점에 밀려 4강 진출에 실패했다. 벌써 3년 연속 8강 탈락이었고, 탈락한 방식도 정말 충격적이었기에 차기 시즌인 18-19 시즌 개막 직전에는 주장 리오넬 메시가 캄프 누에서 팬들을 모아놓고 반드시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겠다고 연설까지 하며 유럽 무대에서의 부진을 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결국 승승장구하며 이번에는 3년 만에 준결승까지 올라가 리버풀 FC를 1차전에서 3대0으로 꺾으며 결승 진출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섰으나, 2차전에서는 전반 초반에 실점해 로마의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했고, 결국 2년 연속 3점차 리드를 뒤집히는 대참사를 당해버렸다.[1]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당시 차범근 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대회 도중 경질을 당하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면서 한국 축구의 영웅에서 역적으로 몰렸고, 이 때문에 2010년대에 와서도 무릎팍 도사 출연제의를 거절하는가 하면, 자신의 칼럼을 통해서도 상처로 남아있음을 밝혔다. 또한 멕시코 전에서 다이렉트 퇴장을 당했던 하석주는 자신의 퇴장 때문에 팀의 역전패와 차범근 감독이 경질되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 무려 20년 동안 차범근을 피해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 2018년 6월 21일자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출연하여 영상편지를 통해 직접 뵙고 사과드리고 싶다고 밝히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며, 러시아 월드컵이 끝난 후 첫 녹화에서 두 사람의 만남이 극적으로 성사, 눈물로 사죄했다. 이 사과를 받던 차범근도 "내가 먼저 찾아가서 위로했어야 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20년이나 지났지만 두 사람에게는 너무나 큰 상처로 남은 사건이었다.
- MBC GAME 폐국 사태 이후 E스포츠 팬들은 MBC MUSIC(현재의 MBC M)을 극도로 혐오한다. 특히 박상현은 아예 음악 방송 자체를 보지 않고, 불가피하게 MBC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할 경우에는 'M사' 혹은 '지금은 없어진 방송사'라는 식으로 직접적으로 방송국명을 입에 담지 않는다. 또한 정인호는 SPOTV GAMES에서 방송한 도타 2 KDL LOUNGE 촬영 중 인터뷰하러 온 김세령 아나운서가 MBC MUSIC 이야기를 꺼내자 "자신은 뮤직 알레르기가 있다"며 화를 내며 쫓아내기까지 했다.[2]
- 가이낙스의 창립 맴버중 1명인 오카다 토시오는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제작 당시 한국의 하청 업체에 일을 맡긴 적이 있었는데, 한국 하청 업체가 개판으로 해 버리는 바람에 본인의 회사인 가이낙스가 파산 직전까지 갔었다. 그 트라우마로 인해 오카다는 극성 혐한이 되어 버렸다. 다만 난징 대학살이나 일본군 위안부를 포함한 일본의 전쟁범죄는 쿨하게 인정할 뿐더러, 아베 신조나 넷 우익,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3] 간단히 말해 그는 극우에 빠져서 혐한이 된 게 아니라,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혐한이 된 것이다.[4]
- 단원고등학교는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로 2학년 학생 대부분을 잃었던 트라우마 때문에 한 학년 전체가 같은 곳으로 가는 대규모 수학여행 및 선박을 이용하는 수학여행을 일절 재개하지 않고 소규모 자율형 수학여행을 고수하면서 반강제적으로 학생들을 수학여행에 끌고 가는 일도 없어졌다. 다만 수학여행에 가지 않는 학생들이 학교에 나와 자율학습을 하는 건 여전한 걸로 보아 조금이라도 더 많은 학생들을 수학여행에 데려가고 싶어하는 생각과 세월호 참사 이전 옛날식 수학여행에 대한 미련은 남아있는 것 같다.
- 데이브 바티스타 - 도시락통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 어린 시절 빈민가에서 살았던 데다가 일찍 부모님을 여읜 탓에 도시락을 싸고 다니던 친구들이 몹시 부러웠던 과거 때문.
- 박지향은 빨간색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고 한다.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은 팀 자체에 트라우마가 걸려 있다. 본래 브라질 국대의 유니폼 색깔은 지금과는 달리 흰색이었는데, 1950년 자기네 나라에서 개최된 FIFA 월드컵에서 우루과이한테 덜미를 잡히는 바람에 다 잡은 우승을 놓치자 곳곳에서 폭동과 집단자살이 일어나는 등 나라 전체가 초상집 분위기가 되었다. 이에 큰 충격을 받은 브라질 축구 협회는 유니폼 색깔을 지금의 것으로 바꿔버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디자인에 조금씩의 변화는 있었지만 색깔은 그 이후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 더 큰 사건이 일어난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러고도 유니폼 색깔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
- 비만인 사람이 옷가게를 가기 싫어하는 경우도 일종의 트라우마가 작용되는 경우다.
- HBO의 드라마 더 퍼시픽의 주인공이자 실제 태평양 전쟁 참전용사였던 유진 슬레지는 전역 이후 외출을 할 때 마다 물을 가득 채운 수통을 항상 챙겼다고 한다 그 이유는 펠레리우 전투 당시 미군 측에서 식수가 부족해지는 사태 때문에 펠레리우 내에서 3일 내내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못 마신 경험을 겪었기 때문이다.
- 악플이나 악성 루머에 휘말린 사람들은 트라우마로 인터넷 공포증이 생긴다고 한다. 심하게는 인터넷을 켜는 것만으로 트라우마가 되살아나기도 하며, 불안감에 관련 검색어를 입력하게 되기도 한다.
- 안정환은 돈을 벌기 시작한 후부터는 식사를 거르지 않는다고 한다. '어릴 때 하도 굶었기 때문에 이제 굶는 건 지긋지긋하며, 돈 벌었으면 먹는 데 써야 한다'라고 발언한 바가 있다. 그 외에도 AC 페루자 시절 구단 사람들에게 인종차별 당한 것은 물론, 한일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었다는 이유로 이탈리아 현지 폭도들이 난리를 피우고 마피아에게 살해협박까지 당하면서 도망치다시피 이탈리아를 떠났다.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이탈리아에 간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갈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탈리아에서 경기 중계를 해야 할 일이 있을 경우가 생겨도 본인은 가지 않겠다고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 양준일은 2020년에 연예계 복귀를 위해 새로운 소속사를 찾아 원만한 합의 후 계약서에 서명 직전까지 갔지만, 결국에는 서명을 하지 못한 채 1인 기획사를 차렸다. 90년대와 V2 시절, 소속사와의 불공정 계약으로 인해 갖은 이유로 제약이 걸린게 많았다보니 계약서만 봐도 호흡곤란이 왔다고.
- 유노윤호는 2006년 안티팬이 준 본드 탄 오렌지 주스 테러 사건으로 인해 한동안 오렌지 주스를 마시지 못 했다고 한다.하지만 스스로 극복해 냈다고....
- 윤지성은 어린시절 겪은 교통사고로 운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고 한다. 워너원고 제로베이스에서 트라우마를 고백하고 연습면허까지 땄다.
- 재수생이 고3시절 들었던 인강 선생의 강좌를 듣고 트라우마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정말 괜찮았던 선생님의 강좌를 다시 듣고 싶어도 못듣는 경우가 있다.
- 전 축구선수 호나우두는 팬들의 사인 요청에 대해 매우 신경을 쓰는 편이다. 그 이유는 어린 시절 브라질 프로리그에서 어느 선수에게 사인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 정두홍은 2014년 정글의 법칙 출연 당시 지속적으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1996년에 스턴트맨 선배가 입수 장면을 촬영하다가 사망하는 것을 봤으며, 그 이후로는 해당 사고가 생각나 물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당시 사고 이후 18년만에 바다 수영을 했으며, 이 때 잡은 해산물로 출연자들이 첫 끼니를 해결했다.
- 젝스키스의 노래 기억해줄래는 팬덤 옐로우키스들에게 큰 트라우마가 남은 곡인데 그 이유는 2000년에 젝스키스가 해체 선언 뒤 드림 콘서트 고별 무대에서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고 가사 내용도 슬프고 해체 당시 상황과 맞물려 트라우마로 남아 2016년 무한도전 토토가2 - 젝스키스편 이전까지 듣지 못했다고 한다.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호나우두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게 얼마나 마음의 상처가 되는 일인지 알기 때문에 유소년 선수 시절 '절대로 팬들을 무시하지 않고 모든 팬들을 응대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며, 현재도 팬서비스를 매우 잘한다. 2010년 FC 바르셀로나 방한 당시, 바르셀로나가 선수들과 스태프들의 태도 등으로 인해 언론들과 축빠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일 때 이브라히모비치는 기자들의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팬들에게도 시종일관 웃으면서 팬서비스를 했었기에 유일하게 이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킨더 초콜릿에는 사족을 못 쓰는데 어린시절 너무 가난해서 먹고 싶어도 먹지 못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프란츠 베켄바워는 아기였을 시절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 패전을 해 온수 공급도 제대로 안되는 환경에서 찬물로 샤워를 해야 했던 과거가 있어 냉수 샤워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으며 아이스 버킷 챌린지 당시에도 얼음물을 뒤집어쓰지 않고 기부금만 냈다.
-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인 나영이와 그 피해자의 가족들은 12년형을 마치고 곧 출소한다는 이유로 이사를 결정했다고 한다.
- 해외의 격투게임 게이머 NYChrisG는 플레이하는 게임의 폭이 매우 넓은 데다가 어떤 상황이든 무조건 이기는 게임을 하려고 하는데, 게임을 하면서 먹는 욕이나 악플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낄 만큼 어린 시절 가정학대와 가난에 시달렸고, 대회ㆍ르 우승상금이 곧 한 달 월세 및 생활비라는 강한 강박관념이 있어서 패배 가능성을 아예 배제한다고 한다. 따라서 탈락했을 때 멘붕의 정도가 극심한 편.
[1] 실제로 제라르 피케의 말에 의하면 하프타임 때 선수단의 멘탈은 로마의 트라우마 때문에 이미 반 정도 나가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첫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조르디 알바는 라커룸에서 울기도 했다.[2] 정인호 본인 왈, 스피커도 음악 감상이 아닌 장식용으로만 쓴다고.[3] 그래서 일본의 극성 혐한들은 오카다를 자신들과 같은 혐한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매국노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4] 다만, 이 건에 대해서는 오카다 본인도 가이낙스의 잘못이 더 크다는 것을 인정한 듯 한데, 이것이 일본의 관점에서는 한국을 비판할 만한 소재가 될지 몰라도 전세계적인 관점에서는 혹사시키려다 실패했다며 징징대는 것으로 밖에 안 보이기 때문이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100원을 주고 200원어치의 일을 시켰는데, 100원짜리 결과물이 나왔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장인정신이 없다며 비난하는 것과 같은 것. 오카다가 말하는 장인정신의 정체는 일본 애니업계 특유의 노동력 착취임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없다. 또한 결론적으로 한국은 일본 애니 업계 최대의 하청국이다. 한국에 하청을 맡긴 일본 애니는 썩어나는데, 유독 나디아만 그랬다는 것은 하청 업체인 한국 쪽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제작사인 가이낙스와 돈줄인 NHK가 손발이 안 맞았다는 것이다. 이 손발이 안 맞은 것 때문에 나디아 제작 과정에서 심각한 트러블이 발생하였고, 이 트러블이 한국에 하청을 맡기는 과정에서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가버린 것이다.[5] 언니들의 슬램덩크 5회에서 성대 재검사 결과 성대 부종인 것으로 밝혀졌다.[6] 씬스틸러 - 드라마 전쟁에서 애드리브로 노래를 불러야 하는 상황에서는 애국가를 불렀다가 '음악했던 사람이 그 상황에서 무슨 애국가냐'며 질타를 받았고, 뮤지컬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을 때에도 '노래 못 한다'며 강력하게 거절했다고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 2에서 밝혔다. 이 이야기를 들은 김형석도 '스스로 세상에 나오기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평했다.[7] 이 때문에 경보음이 포함된 영상을 재생하는 것만으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8] 당시 뮌헨이 원정 1차전을 0대1로 패하고 왔는데 2차전에서 샤비 알론소의 프리킥 득점으로 1대0 리드를 하는 상황에서 뮐러에게 기회가 떨어진 것이었다. 성공했으면 2대0 리드에 합산 스코어까지 2대1로 역전시켜 결승행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실축했고, 뮌헨은 2대1로 승리했지만 원정 다득점 원칙에 밀려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9] 이 승부차기는 참 웃겼던 게 양쪽에서 나온 5명의 키커 중 두 명씩만 성공했다. 오히려 서든 데스에서 독일은 4연속 성공, 이탈리아는 3연속 성공으로 더 나은 모습을 보였다. 결과는 독일이 6대5로 이기며 4강에 올랐다.[10] 다만 레반도프스키가 뛰지 않을 때는 가끔 페널티킥을 차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18-19 시즌 DFB-포칼 32강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