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피우니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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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크라이나의 도시2. 개요3. 상징물4. 민족5. 역사6. 경제7. 관광8. 기타9. 출신인물


1. 우크라이나의 도시[편집]

크로피우니츠키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어: Кропивни́цький
러시아어: Кропивницкий
영어: Kropyvnytskyi

2. 개요[편집]

우크라이나 중부 키로보흐라드주의 주도로 인구는 2019년 기준으로 233,820명이다. 원래는 키로보흐라드였지만, 2010년대부터 우크라이나의 탈러정책으로 크로피우니츠키로 바뀌었다.[1]

주민의 대부분은 우크라이나어, 러시아어를 할 줄 알지만, 우크라이나어의 사용 비중이 높은 편이다.

3. 상징물[편집]

4. 민족[편집]

1897년 조사에서는 유대인러시아인이 각각 37.8%와 34.6%로 대다수를 차지하였으나 1939년 조사에서부터 우크라이나인이 72%로 과반을 넘기기 시작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조사가 이루어진 2001년에 우크라이나인 85.8%, 러시아인 12%으로 우크라이나인이 대다수이며 유대인 비율은 점차 감소하여 단 0.1%만을 차지하였다.

5. 역사[편집]

중세 이전에는 기록이 부족하여 잘 알수 없지만 16세기부터 자포로제 코자크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였으며 1754년 러시아 제국옐리자베타 여제가 새로 얻은 드네프르 강 중하류 지역을 크림 칸국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 지역에 성 옐리사베타 요새(Крепость Святой Елисаветы)를 세우면서 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한다. 성 옐리사베타 요새는 일대의 중심지가 되어 이후 러시아-튀르크 전쟁이 끝난 1784년에 시로 승격해 옐리사베트그라드(Елисаветград)라고 하였다. 요새가 폐쇄된 이후 1800년대부터 오데사하리코프를 잇는 철도의 중간점에 있어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나치에 점령당하기도 하였으나 종전 후 우크라이나 SSR 아래의 도시로 복귀하였다. 소련 시절에는 지노비예스크(Зино́вьевск1 1924 - 1934), 키로보(Ки́рово, 1934 - 1939), 키로보흐라드(Кіровоград/Кировогра́д, 1939 - 2016) 등으로 불렸으나 유로마이단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의 탈공산화 정책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극작가 마르코 크로피우니츠키(Марко Лукич Кропивницький, 1840~1910)의 이름을 딴[2] 크로피우니츠키로 시의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6. 경제[편집]

갈탄,우라늄,고품질 모래가 대량매장 되어있어 광산업이 발전하였으며 원자력 부품제조업 역시 발달하였다.
1인당 GRDP는 2016년 기준으로 1700달러 수준이나 우크라이나의 경제사정이 괜찮아진 지금은 3000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7. 관광[편집]

8. 기타[편집]

지역 스포츠팀으로 축구 구단인 FC 지르카 키로보흐라드, 야구팀 Biotechkom-KNTU있다

야구팀 Biotechkom-KNTU은 골키퍼 출신인 유리 콜라코브스키가 지역 기술학교 학생들을 주축으로 해서 야구단을 이끌어 갔는데 우크라이나 리그에서 22회나 우승하고 유러피언 컵에도 진출하는 등 사실상의 우크라이나 국가대표의 역할을 하고있다.

공업도시 이미자와는 달리 음악학교4곳, 미술학교3곳이 있으며 2017년부터 국가예술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세계대회에서도 우승한 경력이 있는 댄스팀들을 배출해냈다.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 시 당국에 의한 대규모 부정선거가 일어났었다.

불가리아의 도브리치, 카자흐스탄파블로다르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9. 출신인물[편집]


[1] 다만, 주도를 제외한 주의 이름은 바뀌지 않았다.[2] 원래는 제정 시절 이름인 '옐리사베트흐라드'로 환원하려 했으나 우크라이나 정부가 소련 시절 개명된 지명들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14세기 이후 러시아 역사와 관련된 지명으로의 개명을 금지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바람에 흐지부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