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oline Matilda | |
이름 | 캐롤라인 마틸다 (Caroline Matilda) |
출생 | |
사망 | |
장례식 | |
배우자 | 크리스티안 7세 (1766년 결혼 / 1772년 이혼) |
자녀 | |
아버지 | |
어머니 | |
형제 | |
1. 소개[편집]
영국의 공주이자 덴마크 크리스티안 7세의 왕비.
1751년 7월 22일 조지 2세의 장남인 웨일스 공 프레더릭의 유복녀로 태어났다.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고종사촌인 크리스티안 7세와 결혼했다. 하지만 크리스티안 7세는 정신병을 앓고 있었고 결혼생활 내내 아내에게 냉담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프레데리크 6세와 루이세 아우구스타가 태어났다.[1]
1769년 독일의 의사였던 요한 프리드리히 슈트루엔제는 크리스티안 7세의 주치의로 입궁하게 되는데, 캐롤라인 왕비는 처음에는 그에게 냉담했으나 이내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슈트루엔제의 권력은 점점 커져 여러가지 개혁들을 시도하였고, 이는 크리스티안 7세의 계모인 율리아나 마리아 왕대비와 그녀의 아들 프레데릭 왕자의 반발을 일으켰다. 결국 슈트루엔제는 처형당했고 캐롤라인 또한 이혼당한 후 덴마크에서 추방되었다. 이후 첼레에서 성홍열로 23살의 나이에 요절했다.
1751년 7월 22일 조지 2세의 장남인 웨일스 공 프레더릭의 유복녀로 태어났다.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고종사촌인 크리스티안 7세와 결혼했다. 하지만 크리스티안 7세는 정신병을 앓고 있었고 결혼생활 내내 아내에게 냉담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프레데리크 6세와 루이세 아우구스타가 태어났다.[1]
1769년 독일의 의사였던 요한 프리드리히 슈트루엔제는 크리스티안 7세의 주치의로 입궁하게 되는데, 캐롤라인 왕비는 처음에는 그에게 냉담했으나 이내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슈트루엔제의 권력은 점점 커져 여러가지 개혁들을 시도하였고, 이는 크리스티안 7세의 계모인 율리아나 마리아 왕대비와 그녀의 아들 프레데릭 왕자의 반발을 일으켰다. 결국 슈트루엔제는 처형당했고 캐롤라인 또한 이혼당한 후 덴마크에서 추방되었다. 이후 첼레에서 성홍열로 23살의 나이에 요절했다.
2. 가족관계[편집]
2.1. 조상[편집]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첼레의 공녀 조피 도로테아 (Princess Sophia Dorothea of Celle) | |||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의 공녀 카롤리네 (Princess Caroline of Brandenburg-Ansbach) | |||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의 변경백 요한 프리드리히 (John Frederick, Margrave of Brandenburg-Ansbach) | |||
작센아이제나흐의 공녀 엘레오노레 에르드무테 (Princess Eleonore Erdmuthe of Saxe-Eisenach) | |||
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공녀 아우구스타 (Princess Augusta of Saxe-Gotha-Altenburg) | |||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작 프리드리히 2세 (Frederick II, Duke of Saxe-Gotha-Altenburg) | |||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작 프리드리히 1세 (Frederick II, Duke of Saxe-Gotha-Altenburg) | |||
작센바이센펠스의 공녀 막달레나 시빌레 (Princess Magdalena Sibylle of Saxe-Weissenfels) | |||
안할트체르프스트의 공녀 막달레나 아우구스타 (Princess Magdalena Augusta of Anhalt-Zerbst) | |||
안할트체르프스트 공작 카를 (Charles, Prince of Anhalt-Zerbst) | |||
작센바이센펠스의 공녀 조피 (Princess Sophia of Saxe-Weissenfel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