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티야 연합 왕국 Corona de Castilla | |||
국기 | 국장 | ||
위치 | |||
정치 체제 | 전제 군주제 | ||
국가 원수 | 왕 | ||
주요 국왕 | |||
카스티야어 레온어 등 | |||
종족 | 카스티야인 레온인 안달루시아인 등 | ||
주요 사건 | |||
통화 | |||
성립 이전 | |||
계승 국가 | |||
Corona de Castiella (현대: Castilla) | |
Corona Castellae | |
Reino de Castiella | |
Coroa de Castela | |
Couronne de Castille | |
تاج قشتالة | |
Crown of Castile |
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2.1. 성립[편집]
2.2. 레콩키스타[편집]
1212년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에서 무와히드 왕조가 패배한 후 무와히드 왕조는 급격히 몰락했고, 카스티야 연합 왕국은 안달루스를 향해 공세를 가하여 1248년까지 안달루스 대부분에서 이슬람 세력을 쫓아냈으며, 남아있던 일부 토후국들도 나스르 왕조의 그라나다를 제외하고는 1260년대까지 전부 정복되었다.
2.3. 카스티야 내전[편집]
알폰소 11세의 사후 두 왕자 페드로와 엔리케는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왕위를 둘러싸고 내전을 벌이게 되었다. 페드로는 영국의 흑태자 에드워드의 도움으로 엔리케를 몰아냈지만 페드로가 에드워드에게 보상금을 지불하지 않아 에드워드는 카스티야를 떠났고 도망쳤던 엔리케가 이 틈을 타 돌아와 페드로와 다시 전투를 벌여 1369년 몬티엘 전투에서 페드로를 전사시켰다. 결국 엔리케는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엔리케 2세로 왕위에 오르게 된다.
2.4. 아라곤 왕국과의 관계[편집]
엔리케 3세 사후 엔리케 3세의 동생인 안테케라의 페르난도는 왕위를 거부하고 엔리케 3세의 아들 후안 2세의 섭정이 되었다. 1412년 카스페 합의로 페르난도는 아라곤 왕국의 왕위에 올라 페르난도 1세가 된다.
2.5. 왕위 계승 분쟁[편집]
후안 2세의 아들인 엔리케 4세는 귀족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두 번째 아내인 포르투갈 여왕 후아나가 낳은 공주 후아나 라 벨르라네하가 카스티야 귀족 벨트란 데 라 쿠에바와의 불륜으로 낳은 아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귀족들은 후아나 공주의 왕위 계승권을 박탈하고 왕의 배다른 동생인 아스투리아스 공작 알폰소를 후계자로 삼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알폰소가 사고로 사망해 배다른 동생인 이사벨 1세가 후계자가 되었다.
2.6. 가톨릭 군주[편집]
1469년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왕국의 왕세자 페르난도 2세가 카스티야의 바야돌리드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479년 페르난도 2세가 아라곤의 왕위에 올라 카스티야와 아라곤 두 왕국은 일시적 연합을 이루었다. 교황은 이들에게 가톨릭 군주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두 국왕은 1487년에서 1497년에 걸쳐 카나리아 제도를 정복했다. 1492년 1월 2일에는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왕국인 나스르 왕조의 그라나다를 함락시키고 알함브라 궁전에 입성해 재정복 운동을 완료했다. 같은 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두 국왕의 후원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 이처럼 에스파냐의 많은 업적이 이루어졌던 1492년은 아직까지도 에스파냐 국민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있다.
두 국왕은 1487년에서 1497년에 걸쳐 카나리아 제도를 정복했다. 1492년 1월 2일에는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왕국인 나스르 왕조의 그라나다를 함락시키고 알함브라 궁전에 입성해 재정복 운동을 완료했다. 같은 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두 국왕의 후원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 이처럼 에스파냐의 많은 업적이 이루어졌던 1492년은 아직까지도 에스파냐 국민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