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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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출생
전라북도 부안군 일도면
(현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당상리)[1]
사망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줄포리 후촌 40고라당
경산(耕山)
상훈
건국포장

1. 개요2. 생애3. 기타

1. 개요[편집]

한국의 공산주의자. 한국의 항일운동가.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최순환은 1912년 9월 9일 전라북도 부안군 일도면(현 동진면 당상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6년 3월 부안공립보통학교(扶安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1927년 4월 경성 사립 중동학교에 입학하였다 자퇴하고, 부안군으로 돌아왔다. 박병권, 최옥환(崔玉煥)과 함께 신사상연구를 시작했다.

그들은 1931년 음력 10월경 부안군 동진면 당상리에 조직된 '위친계(爲親契)'라는 조직을 '농민조합'으로 변경하였고, 이후 '당상리 저축조합'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최순환은 저축조합의 서기로 소작료와 세금지불을 거부하고,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공산이상사회 건설을 시도하는 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출옥 후 당북 간이학교 인가를 얻은 후 교사를 맡아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는 8.15 광복 후 당오 초등학교를 세웠으며, 동진면 농민위원회를 결성해 위원장을 맡았지만 명의만 걸었을 뿐 별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그를 좌익인사로 간주하고 보도연맹에 그의 이름을 넣었다.

6.25 전쟁 발발 후, 그는 논에서 모내기를 하다 경찰에게 돌연 체포되었고, 1950년 7월 19일 줄포면 줄포리 후촌 40고라당에서 보도연맹원들과 함께 총살되었다.

3. 기타[편집]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최순환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1] 탐진 최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