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 |
사망 | 몰년 미상 |
사망지 미상 |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최성수는 1891년 2월 18일 평안남도 평원군 해소면 금학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5년 이래 러시아령 니콜리스크·하바로프스크·블라디보스토크,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독립운동가 유동열·문창범·이동휘 등과 친교를 맺으며 활동하였다.
1919년 5월 경 중국 상하이에 소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특파원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6월 경 입국해 1920년 1월까지 평안남도 평원군과 평양부 일대에서 권총을 휴대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이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5년 경 북만주 일대에서 신민부(新民府) 간부로 활동하던 중 체포되었다. 출옥 후인 1930년 12월에는 지린성(吉林省) 이란현(依蘭縣)에서 비밀결사 활동 중 또다시 체포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1920년 11월 5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받고 1922년 6월 18일 출옥할 때까지 약 1년 6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또한 1930년 12월 중국 지린성 이란현에서 중국 관헌에 ‘공산당 피의자’로 체포되어 수차례 고문을 받았다. 1931년 11월 4일 출옥할 때까지 약 11개월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최성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919년 5월 경 중국 상하이에 소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특파원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6월 경 입국해 1920년 1월까지 평안남도 평원군과 평양부 일대에서 권총을 휴대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이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5년 경 북만주 일대에서 신민부(新民府) 간부로 활동하던 중 체포되었다. 출옥 후인 1930년 12월에는 지린성(吉林省) 이란현(依蘭縣)에서 비밀결사 활동 중 또다시 체포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1920년 11월 5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받고 1922년 6월 18일 출옥할 때까지 약 1년 6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또한 1930년 12월 중국 지린성 이란현에서 중국 관헌에 ‘공산당 피의자’로 체포되어 수차례 고문을 받았다. 1931년 11월 4일 출옥할 때까지 약 11개월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최성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