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최명용(崔明用) |
이명 | 최명룡(崔明龍), 최석기(崔石基) |
생몰 | |
사망지 |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대통령표창 |
최명용은 1891년 3월 21일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오금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3일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공북학교(拱北學校)에서 이원기(李元基)·조경호(趙經鎬)·원필희·이원문(李元文) 등이 주도한 3.1 운동에 참여해 장암리, 외룡리, 덕산리를 돌며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독려했다. 이후 동지들과 함께 군중의 선두에서 독립마넷를 고창하며 여주읍내로 행진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5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공소하여 같은 해 7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태형 90도에 처해졌다. 이후 이천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5년 1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최명용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