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명정문 관련 틀 |
[ 펼치기 · 접기 ] |
창경궁 명정문 및 행각 昌慶宮 明政門 및 行閣 | |
소재지 |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궁궐 |
수량 | 1동 |
지정연도 | 1963년 1월 21일 |
제작시기 | 조선시대, 1483년 창건, 1616년 중건 |
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1483년(성종 14년) 처음 지어졌다. 다른 궁궐의 정전 정문과는 다르게 남향이 아닌 동향하고 있으며, 이는 풍수지리 및 지형 문제에 근거해 배치한 것이다.[3] 이후 중앙의 왕과 신하가 함께 조회를 하는 조참과 죄인들을 심문하는 국청, 외부인 접견과 과거 시험장 등 많은 국가의 대소사가 열렸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화재로 불탄 뒤 1616년(광해군 8년)에 중건되었고, 몇 차례 수리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있다. 즉, 명정문은 현존하는 궁궐 정전의 정문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따라서 홍화문, 명정전과 같이 17세기 초 목조 건축 양식을 연구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화재로 불탄 뒤 1616년(광해군 8년)에 중건되었고, 몇 차례 수리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있다. 즉, 명정문은 현존하는 궁궐 정전의 정문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따라서 홍화문, 명정전과 같이 17세기 초 목조 건축 양식을 연구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명정문 | 창경원 시절 명정문 |
3. 구조[편집]
-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총 6칸이며 겹처마 양식에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세운 1층짜리 문이다.[4] 장대석으로 쌓은 4단의 기단에 7단의 계단이 건물 전면에 설치되었다. 그 위에 원형으로 된 주춧돌 위에 원기둥을 올린 뒤 그 위에 창방[5]과 평방[6]을 놓아 공포를 받치게 하였다. 공포는 외 2출목, 내 3출목의 다포 양식으로 하였고 모든 기둥과 기둥 사이의 중간에 2개의 공포를 두었으며 이를 주간포라 부른다. 중앙 2개의 기둥은 고주(高柱)라 하여 다른 기둥보다 훨씬 높게 세웠다. 다른 궁궐과는 달리 협칸과 어칸의 너비 차이가 거의 없으나 어칸이 30cm 정도 더 길다.
홍화문, 명정문, 명정전의 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