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역사
고고학적인 연구결과를 보면 고조선의 초기수도는 차오양(조양)에 위치해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있다.(십이대영자 문화)
위진남북조 시대의 용성 (번체자 : 龍城, 간체자 : 龍城, Longcheng)이 바로 이곳이었다. 341년에 전연의 황제인 모용황에 의해 건설되었고, 342년부터 350년까지 수도였다. 전진의 화북 통일 후에시즌.2 용성은 397 ~ 409년간 후연의 수도였고 뒤를 이은 북연 (407 ~ 436년)의 유일한 수도로 번영하였다.
이후 고구려군이 북연을 접수하러온 북위군을 위압하고 용성을 불지르고 인구를 흡수하였다. 둘 사이 국경지대가 된 이 일대는 점점 쇠락하여 수나라, 당나라 시대에는 인구 수천~수백 규모의 소규모 거점 수준으로 전락한다. 오죽하면 요서 일대를 싹 무시하고 유주부터 요동까지 2천리 구간에 당나라 행정구역이 없어서 보급이 안된다는 말까지 당태종 입에서 나올 정도.
용성, 즉 롱청은 현재 조양의 중심부에 위치한 구이다. 당나라 때에는 영주로 불렸으며, 요서 지방의 중심지였는데, 고구려 멸망 이후 그 유민들이 강제로 이주당한 장소가 되었다. 그 유민들 중 일부는 거란의 대봉기 시에 대조영을 따라 발해를 건국하였다. 남은 유민들은 한화 정책에 굴복하였지만 이정기와 같은 호걸이 탄생하기도 하였다. 1891년에는 도시에서 한족들의 봉기가 일어나 수천명의 몽골/만주족이 살해되기도 하였다. 중화민국 시대에는 열하성에 속하다가 중공 수립 후 요녕성에 편입.
위진남북조 시대의 용성 (번체자 : 龍城, 간체자 : 龍城, Longcheng)이 바로 이곳이었다. 341년에 전연의 황제인 모용황에 의해 건설되었고, 342년부터 350년까지 수도였다. 전진의 화북 통일 후에
이후 고구려군이 북연을 접수하러온 북위군을 위압하고 용성을 불지르고 인구를 흡수하였다. 둘 사이 국경지대가 된 이 일대는 점점 쇠락하여 수나라, 당나라 시대에는 인구 수천~수백 규모의 소규모 거점 수준으로 전락한다. 오죽하면 요서 일대를 싹 무시하고 유주부터 요동까지 2천리 구간에 당나라 행정구역이 없어서 보급이 안된다는 말까지 당태종 입에서 나올 정도.
용성, 즉 롱청은 현재 조양의 중심부에 위치한 구이다. 당나라 때에는 영주로 불렸으며, 요서 지방의 중심지였는데, 고구려 멸망 이후 그 유민들이 강제로 이주당한 장소가 되었다. 그 유민들 중 일부는 거란의 대봉기 시에 대조영을 따라 발해를 건국하였다. 남은 유민들은 한화 정책에 굴복하였지만 이정기와 같은 호걸이 탄생하기도 하였다. 1891년에는 도시에서 한족들의 봉기가 일어나 수천명의 몽골/만주족이 살해되기도 하였다. 중화민국 시대에는 열하성에 속하다가 중공 수립 후 요녕성에 편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