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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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국장.svg
주 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
駐台北韓國代表部
소재지
파일:대만 국기.svg[1] 333, Section 1, Keelung Road,
Xinyi District, Taipei
국가
대표
강영훈
상급기관
홈페이지
SNS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주 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 페이스북
1. 개요2. 역사
2.1. 역대 대표
3. 이용가능한 대중교통4. 기타

1. 개요[편집]

대한민국중화민국에 설치한 외교공관으로 이름은 타국의 외교공관인 대사관이나 영사관과 다른 "대표부"지만 실질적으로 그들과 같은 일을 한다. 이렇게 복잡하게 된 이유는 하나의 중국, 타이베이 대표부 참고.

2. 역사[편집]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일본을 비롯한 추축국의 패배로 종전하며, 일본의 식민지였던 대만 섬중화민국에 환원되었다. 이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양국은 외교관계를 준비하여 1949년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맺게 되나, 이 때 당시는 공산당과의 내전이 한창이던 때였고, 이 내전에서 사실상 패배한 국부군은 쫒기고 쫒기다 결국 대만 섬으로 쫒겨나기에 이르른다. 자유진영에 속하던 한국으로선 당연히 공산당 놈들에게 포로로 잡힐 순 없으니역시 같은 진영이던 국부군을 따라갈 수 밖에 없었기에 당시 중국에 주재하던 한국 외교관들도 고생끝에 대만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국부천대 이후는 말할 것도 없고 1979년 미중수교 이후로 타국들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공과 수교하던 와중에도 한국은 대만과의 관계를 지속했으나,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동·서독 통일이나 동유럽 혁명소련 해체등의 굵직한 사건을 거치며 냉전적 질서로 유지되던 시대가 바뀌어버렸고, 이전의 중공 여객기 불시착 사건이나 중국 해군 어뢰정 망명사건 등을 상호 협력하여 무사히 해결했던 좋은 기억 및 중공의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1988 서울 올림픽 참가로 말미암아 양국의 관계는 호전세로 들어섰고 마침내 1992년 한국이 중국과 수교하며 대만과는 단교하게 되었다.

정치적 이유로 인해 단교하게 되었으나 정말로 서로 소·닭보듯 할 수는 없기에 이듬해인 1993년 양국이 따로 협정을 맺어 대표부를 설립하게 되었고, 이중 우리나라가 대만에 세운 것이 바로 주 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이다. 반대로 대만이 한국에 세운 것은 주한국대만대표부가 있는 서울과 영사관 포지션인 부산 사무처이다.

2.1. 역대 대표[편집]

초대
2대
3대
4대
5대
한철수[2]
강민수
윤해중
손훈
황용식
1993.11 ~ 1995.12
1996.2 ~ 1999.2
1999.2 ~ 2002.2
2002.2 ~ 2004.2
2004.3 ~ 2006.2
6대
7대
8대
9대
10대
오상식
구양근
정상기
조백상
양창수
2006.2 ~ 2008.9
2008.9 ~ 2011.9
2011.10 ~ 2014.4
2014.4 ~ 2016.11
2016.11 ~ 2019.4
노무현 정부
11대
강영훈
2019.4 ~

3. 이용가능한 대중교통[편집]

3.1. 버스[편집]

  • 타이베이 버스 棕7
  • 타이베이 버스 棕18
  • 타이베이 버스 綠1
  • 타이베이 버스 藍5

3.2. 철도[편집]

4. 기타[편집]

[1] 통상적으로 본국과 주재국의 국기가 동시에 게시되는 것과 달리 대만 대표부 홈페이지에는 태극기만 있고 대만 깃발은 없다. 홍콩 특별행정구의 구기를 게시한 홍콩 총영사관팔레스타인의 국기를 게시한 팔레스타인 대표부 홈페이지와는 대조적이다.[2] 마지막 주 대만 한국대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