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신무》 어릴 때부터 원후파 제자가 된 종리당은 어떤 일로 인연이 닿았는지 알 수 없으나,
청성파(靑城派)의
삼절도인(三絶道人) 일맥과 깊은 교우를 갖는다. 심지어
하후염이 살인을 많이 일삼는다는 이유로 100년 전의
녹림왕(綠林王)이 행보를 시작했다는 녹림의 산채인 용채를 멸절시킨 일을 그가 조해도인(照解道人)과 함께 시신을 묻고 산채의 모든 것을 다 뽑아 엎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뒤처리를 한 적도 있다. 그렇게 하후염과 특히 친분이 깊었던 그는
청성육검협(靑城六劍俠)과도 자주 어울려 젊은 시절을 보낸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일까? 하후염과 비슷한 막무가내인 종리당은 자신의 성격을 잘 알았기에 당연히 장문인 자리를 맡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전대 장문인이었던 계명선생(啓明先生)이
원후오귀(元侯五鬼)에게 기가 눌리지 않고 문중을 이끌어갈 만한 이가 그 밖에 없다고··· 제자들을 동원하여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은 다음, 강제로 장문인 자리를 넘긴다. 이때 동문 사형제인 반위릉과 심무강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종리당을 붙잡는 일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1]4~5년마다 원후파는 문인들이 사당에 모여 열조(烈祖)님들에게 제례를 지낼 겸 회합을 갖는다. 이를 종리당이 장문인이 된 후 여러 차례, 이번에도 무난하게 지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산유를 나온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의 1,000명가량 되는 큰 패거리가 나타나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무시하면서 짓밟고 지나가려 한다. 무례함에 제대로 열이 오른 원후파는 그 무리를 박살 낸다. 이런 자리에 빠지지 않는 종리당도 피칠갑을 하며 활약하고, 하나뿐인 제자인
배원세까지 난폭하게 굴린다.
이 사건으로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자 종리당은 장로들에게는 연락도 하지 않은 채 문하제자들을 이끌고 날름 대회합이 열리는 청성파로 피신한다.
[2] 그는 숙식비 대신 청성파 장문인
불해도인(不解道人)의 부탁을 받아들여
당가채(唐家寨)와
방무한 무리의 중재에서 윽박질러 어깃장을 놓는 역할을 맡는다. 덕분에 원후파는 손님으로 운리관에 머물며 수십 년 만에 육검협의 뒤를 잇는
도운연이
삼절(三絶)과 청풍검법(淸風劍法)만을 사용해
사천오흉(四川五凶)을 기왓장으로 때려눕히는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종리당은 자신도 하후염을 따라 여행하며 큰 배움을 얻었던 것과 같이 좋은 기회라 여겨 배원세를 파문되어 세상으로 나아가는 도운연에게 동행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