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ovanni Gabriel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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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제일 훌륭한 음악을 성 로코 축일, 아침에도 오후에도 들었다. 너무 좋아서 이런 음악을 들을 수만 있다면 수백 킬로미터라도 걸어가겠다는 기분이었다...(중략)... 내가 받은 느낌으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때 심히 몰입하나 나머지 성 바울과 함께 제 3의 천국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산 마르코 대성당의 오르가니스트였던 안드레아 가브리엘리의 조카였다. 삼촌은 안드레아로부터 음악교육을 받고, 1586년에 그가 죽고 조반니가 그 자리에 지명됐다.
3. 음악세계[편집]
가브리엘리의 대표작, 《강과 약의 소나타》(Sonata pian e forte).[1]
가브리엘리를 악기를 사람의 목소리처럼 다뤘고, 당시 베네치아에서 유행했던 플랑드르 양식의 이중 합창 효과를 사용하였다. 대규모 편성[2]에 의한 음악적 정점을 추구한 것이 그의 작품이다. 이중의 관악 합주단이 내는 음색이 웅장한 성당에 울려퍼지는 효과는 엄청났을 것이다. 이런 그의 기악 작품들에 그는 '칸초나'라고 제목을 붙였다. 하지만 소나타라 불리는 곡도 몇 곡 있다.
또한 그는 음악이 언제 어디서 세게(포르테), 여리게(피아노) 연주돼야 하는지 악보에 표시했는데, 오늘날에는 당연할지 몰라도 당시에는 엄청난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이러한 기법들은 상단 영상으로 소개된 그의 대표작, 《강과 약의 소나타》 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런 놀라운 효과들을 배우려 유럽에서 작곡가들이 가브리엘리에게 몰려왔는데, 하인리히 쉿츠가 대표적이다. 그레고리오 알레그리 또한 가브리엘리의 이중합창단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